「다시 맞은 한국의 외환위기」.
지난 73년 제1차 석유파동(오일쇼크)때 한국은행 외환자금과장으로서 바닥난 외환보유고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우영(李愚榮·61)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은 『공직을 떠난 몸이지만 너무나 참담한 심경으로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한은부총재 중소기업은행장 중소기업청장 등을 지내고 지난 8월 공직에서 물러난 그를 11일밤 만나 최근 외환위기의 원인과 처방을 들어봤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다시 겪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첫째 원인은 재벌기업들이 관치금융을 등에 업고 무리한 차입경영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제2금융권은 은행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금수요를 보충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하는데 오히려 제2금융권이 은행보다 덩치가 커지는 등 금융시스템이 잘못된 탓입니다. 셋째는 정부의 정책 잘못입니다. 94년부터 불어난 경상수지 적자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하지 않고 단기외채를 빌려와 메워 왔습니다』
―외환위기 징후는 언제 나타났습니까.
『단기자본수지가 2천9백만달러 적자로 반전된 지난 7월입니다. 경상수지적자를 단기자본수지가 메워왔는데 이마저 적자로 돌아섰다는 것은 외환위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1천7백원을 넘어섰습니다.
『실물경제를 감안할 때 적정환율은 1천2백원선입니다. 지금의 환율은 지나치게 높습니다. 정부가 환율안정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면 기업들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시장에 공급, 환율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외환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18일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나온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입니다. 지금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입니다. 새 대통령이 국민과 기업, 은행,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각 부문에 숨어있는 달러화를 시장으로 끌어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달러화를 갖고 있는 은행 기업들은 달러화가 더 필요하면 한국은행에 손을 벌립니다. 심지어 원화 대신 부피가 적은 달러화로 뇌물을 건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민간부문이 가진 달러를 시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IMF와의 합의조건이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가 협상시기를 놓쳐 벼랑 끝에서 협상을 하다보니 조건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외면을 당할 것입니다. 특히 IMF의 요구조건을 「치욕」으로 생각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IMF로선 빌려준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므로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요구한 것입니다.
실물부문의 구조조정은 물론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히 정리하라는 약속도 정부가 성실히 이행해야 금융시장의 혼란을 서둘러 수습할 수 있습니다. IMF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합니다』
〈천광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