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77)

  • 입력 1997년 12월 8일 08시 02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45〉 여자의 목을 베어버린 마신은 이제 나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자, 봤지? 나는 이 년을 내 손으로 해치웠어. 우리들 법도로 말할 것 같으면, 마누라가 간통을 하면 죽여도 상관없어. 이 계집을 나는 결혼 첫날밤에 채어왔어. 따라서 나 이외에 다른 남자라곤 몰랐어. 나는 열흘에 한번씩 페르시아 인으로 변신하고 와 이 여자와 자곤 했어. 그러나 이 년이 서방질을 하여 나를 배반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아서 나는 죽여버렸어. 한데 네놈의 경우는 좀 달라. 정황으로 보아서는 저년과 붙어먹은 것이 틀림없는데 너희 연놈들이 서로 짜고 끝내 불지 않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네놈을 죽일 수도 없어. 그렇다고 네놈을 그냥 놔 둘수는 없지』 마신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울부짖었습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 이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시오』 그러나 마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안될 일. 나는 네놈을 죽음보다 더 비참한 꼴을 당하도록 해주겠다. 두고두고 마음의 고통을 당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말한 마신은 덥석 내머리털을 움켜잡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얼마나 높이 날아올랐던지 저아래 대지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조그마한 접시처럼 작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높이 날아오르던 마신은 이윽고 어느 산꼭대기로 내려가더니 거기다 나를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리고는 흙을 한줌 거머쥐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과 함께 나의 몸에 끼얹었습니다. 그러면서 외쳤습니다. 『그 허울을 벗어버리고 원숭이가 되어라』 그와 동시에 나는 그만 한 마리의 원숭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백 년도 더 되어 털은 벗겨지고 꼬리도 잘려나간 아주 늙은 원숭이 말입니다. 『네놈은 이제 영영 내 마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마신은 이렇게 말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마신이 사라진 뒤 나는 내가 되어 있는 꼴을 보고, 내 신세를 처량히 여겨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그 처녀의 무참한 죽음이었습니다. 나를 지켜주기 위하여 그녀는 그 모진 고문에도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괴로웠지만 운명이란 본래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지는 않아서 어떤 사람에게는 불공평하고 가혹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나는 애써 체념했습니다. 나는 산을 내려갔습니다. 산 아래에 이르자 황폐한 광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막한 황야를 한달 동안이나 걸어 마침내 어느 바닷가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도 없는 외딴 바닷가에서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하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바다 저 멀리서부터 순풍에 돛을 단 배 한척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그 배는 먼 항해에 지친 선원들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하여 이 해변으로 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바닷가 바위 틈에 몸을 숨긴 채 배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배가 해안에 닿았습니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하여 배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길밖에는내가 갈수 있는 길은 없었으니까요.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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