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전에 갔을 때였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 동전그릇을 들고 구걸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른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사정을 알아봤으나 동전은 한닢도 없었다. 노인이 옆으로 다가오자 나는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침묵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서울에서의 습관대로.
그러자 노인은 『어찌 어른에게 건방지고 버릇없이 고갯짓이냐』 하며 호통을 치는게 아닌가. 순간 억울하고 묘한 생각이 들었으나 생각할수록 어른에게 무례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공손하게 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는데 같은 내용을 가지고 왜 그런 무례를 범했을까. 왜 서울의 노걸인들은 그런 이치를 진작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원망의 화살만 서울쪽으로 돌렸다.
그렇게 혼난 뒤로는 어른이나 아이나 걸인에게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깨어졌다. 문득 「지하철 경로석 꼭 양보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논란을 벌였던 PC통신 토론방이 떠올랐다.
젊은이들이 꼭 노인을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리라. 부모가 어려서부터 전쟁이라도 하듯 공부에 매달리는 자녀가 안타까워 늘 양보하다 보니 「내가 먼저」라는 사고가 굳어져버린건 아닐까. 우선 이런 덕담부터 해야겠다. 『오늘 버스에서 얼른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를 보니 참 믿음직하더라. 저도 공부하느라 지쳤을텐데』 이런 말을 자꾸 듣다보면 젊은이들의 태도도 바뀌지 않을까.
자는 체 딴청을 부린다는건 아직도 양보하는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다. 경로석을 차지한 젊은이가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이곳은 경로석이니 늙은이가 앉아야겠네』 하고 떳떳이 알린다면 얼른 일어날 것이다. 고도산업사회로의 가속도가 붙어 있는 현실에서 도덕규범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지 않고 나무라기만 하는 사회가 잘못이다.
비록 구걸을 할지라도 잘못된 행동을 바로 고쳐주는 노인이 있기에 충청도가 「영원한 양반의 고장」으로 빛나지 않는가. 노인들이 겉으로는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섭섭해한다면 그나마 남은 경로석조차 찾기 힘드리라. 이제부터라도 젊은이를 잘 선도하자. 그래서 『여기 앉으세요』 『젊은이 고맙네』 하는 인사가 가득찰 때 차는 더욱 신나게 달리고 여행은 즐거워지리라.
이애순(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