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철수/대선후보 노동-복지정책 강연회를 보고

  • 입력 1997년 11월 20일 20시 24분


노동문제는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평가가 주관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따라서 20일 대선후보 초청 강연회에서 나타난 대선주자들의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에 관해 논평하기 앞서 먼저 필자가 다음과 같은 관점에 유의해서 토론을 지켜봤음을 밝혀둔다. 탈이념화의 시대에 맞춰 노동운동이 계급적 대립을 지양하고 협력과 화해의 참여적 노사관계로 발전하여야 한다는 점,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의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노동자의 권익 못잖게 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노사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 사회복지는 시장원리로 해결하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적극적 행정이 필요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 법개정 진보적 입장 ▼ 강연회에서 세 후보는 이구동성으로 지식정보화시대에는 인적자원의 양과 질이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노사관계의 안정과 고용불안 심리의 해소 및 인력개발 정책의 선진화가 시급함을 역설했다. 이회창후보는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정책비전을 제시하는데 주력하면서 경제활성화와 기업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특히 강조했다. 당내에서 상당히 세밀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김대중후보는 구체적인 정책제시보다는 노사정책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고 노사의 권익이 공평하게 보장되는 화해 협력의 노사관계를 강조했다. 노동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이인제후보는 노사정책의 실패 원인을 정치구조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특히 인력개발정책을 역설했다. 노동부장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최근의 흐름에 밝은 듯 보였다. 이어진 패널들과의 토론에서는 개정노동법의 내용에 대한 견해와 집권시에 다시 법개정을 할 용의가 있는지에 관한 물음이 주종을 이뤘다. 이회창후보는 현행법이 다소 노동계에 불리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적 안정성의 견지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김대중후보와 이인제후보는 노조의 정치활동과 전임자 문제에 관해 현행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선별적으로 법개정 용의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쳐 이회창후보보다는 다소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토론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노동복지 정책 △향후 정부의 역할 △후보들의 비전 등에 관한 종합적인 질문이 없었다는 점이다.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모토로 삼아온 현재의 정부조직 및 예산편성 체제에서 세 후보들의 공약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또 구태여 올해 초의 날치기 파동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노동문제는 매우 유동적이고 동태적인 사안이라 「진열장에서 정책을 나열하는」 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세 후보들이 평소 이를 얼마나 인식하고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었는지를 간파할 수 있는 질문이 필요하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회창후보에게는 자신의 정책이 사회적 역학관계 때문에 제대로 수용되지 않을 경우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이후보는 솔직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치밀한 답변을 했으나 노동문제의 역사성과 사회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 구체적 인식 미흡 ▼ 김대중후보에게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노사관계를 정립하는데 필요한 사회정치적 인프라 구축방안을 묻고 싶었다. 김후보는 일관된 논리체계를 갖고 거시적 차원에서 노사화합론을 설득력있게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신의 정책비전이 연합정권 하에서 지속적으로 관철될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이인제후보에게는 노동복지문제와 관련, 예의 3김청산과 정치개혁을 강조했는데 그동안 노사문제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과연 정치적 요인에 기인한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 구조 및 행태가 사회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이후보의 진단이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인식에 근거한 것인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철수(이화여대 교수·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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