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한중/진흙탕 정쟁 그만두라

  • 입력 1997년 10월 27일 06시 58분


지금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살맛나게 하는 것은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14승을 올린 박찬호선수와 월드컵 본선 4회 연속진출이란 벅찬 감격을 온 국민에게 안겨준 월드컵축구 대표팀이다. 반대로 우리를 화나게 하고 이제는 비판마저 거둬들인 채 냉소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박찬호선수와 월드컵 축구팀의 경기를 보면서 환호하는 것일까. 물론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국내경기가 아니라 세계를 상대해서 얻은 승리이고 깨끗한 매너로 정당하게, 상대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선수들이 더 잘해서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땅의 정치현실은 정반대로 우리에게 절망을 주고 있다. 희망을 주기는커녕 경제난 등 산적한 현실문제도 전혀 풀지 못하고 있다. 오직 정권만 차지하려는 구태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정한 규칙하에 건전한 정책대결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가 어떻게 되든, 삼류정치로 인해 국민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든 말든,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 이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대선이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질 경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21세기 한국에는 비전이 없다.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고 남과 북이 하나되어 인류번영에 기여하는 희망찬 꿈이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다. 국민은 바로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되겠다는 개인의 꿈을 성취시켜주기 위해 선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치가들은 나라와 국민을 살리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공정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규칙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스스로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거관행이 이랬기 때문에 정치개혁을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 남은 두달 동안 각 정당과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행보보다는 진정한 정치개혁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치개혁이 성공할 경우 차기 대통령이 할 일보다 더 값진 것, 즉 미래에 대한 희망을 국민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스포츠만을 통해 기쁨을 맛보아야 할 것인가. 김한중(연세대 사회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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