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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7년 9월 29일 0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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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날 네발로 뛰는 몽골말처럼 기동력과 몸싸움에서 일본을 압도했다. 일본은 2륜구동차처럼 발이 무거웠다.
고정운 하석주 이상윤은 몽골말처럼 줄기차게 뛰었다. 후반 이들의 체력이 떨어지자 차범근감독은 「빠른 말」 최성용 서정원 김대의를 차례로 교체 투입했다.
그것은 일본의 약점을 찌른 절묘한 용병술이었다. 결국 이들은 차감독의 기대대로 일을 저질렀다. 적토마 고정운이 저지른 정말 큰일날 뻔한 단 한번의 실수(후방에서 볼을 끌다가 일본에 빼앗겨 한골 먹은 것)를 빼놓으면 이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축구는 왜 매력적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원시성과 단순성때문이다. 처절한 몸싸움은 차라리 전쟁터의 백병전과 흡사하다.
일본은 이런 축구의 원시성을 무시했다. 브라질 기술축구의 겉멋에 취했다. 현대전은 아무리 융단폭격과 함포사격을 잘해도 결국은 보병이 마지막 고지에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 이긴다. 보병의 강점은 당연히 백병전. 한국은 줄기찬 기동력과 끈질긴 몸싸움으로 일본의 발을 꽁꽁 묶었다.
더구나 일본은 물먹은 솜처럼 지쳐 있었다. 때문에 백병전에서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중간에서부터 몸을 내던지는 육박전으로 일본의 보급루트를 봉쇄했다. 일본은 보급을 지휘하고 있는 허리진이 후반 한때를 빼놓고는 거의 무기력했다. 일본은 몸싸움을 싫어했다. 한국의 육탄전을 맞받아 치기보다는 「브라질식 기술」로 백병전을 피하려 했다.
로페스를 처음부터 뛰게 한 것도 가모 슈 감독의 자충수. 한두번 날카로운 슈팅을 선 보였지만 보병이라기보다는 육박전을 싫어하는 포병에 불과했다. 백병전에서 포병이 무슨 소용인가. 후반에 「조커」로 쓰는 게 훨씬 나을 뻔했다.
축구는 민족성을 닮는다. 한국축구는 아기자기하지 못하지만 몽골의 말처럼 잘뛰고 투쟁적이다. 거칠고 선이 굵으며 패스도 직선적이다. 일본축구는 섬세하고 조직적이다. 패스가 둥글고 부드럽다. 브라질에는 브라질축구가 있고 일본엔 일본축구가 있다. 일본대표팀 11명을 전부 브라질 귀화선수로 바꾼다 해도 그것은 브라질축구이지 일본축구는 아니다. 한국은 「한국식 된장축구」로 「일본의 브라질식 축구」에 한방 먹인 것이다.
〈김화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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