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어린 목숨이 결국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다. 박초롱초롱빛나리양이 유괴된 지 14일만이다. 공개수사 이후 무사생환을 기원하던 많은 국민들에게 박양의 죽음은 깊은 허탈감과 함께 분노를 안겨줬다. 아무리 사회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성이 메말라간다고 해도 어떻게 이러한 인면수심의 범죄가 저질러질 수 있는가. 참담하고 통탄스러울 뿐이다. 추석을 앞두고 딸의 시신을 맞은 가족들에게도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맨먼저 검거된 나리양 유괴범은 임신 8개월째인 가정주부다. 여러명의 유괴범들은 학원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나선 나리양을 감금해놓고 부모와 전화로 돈을 흥정하다 실패하자 어린 목숨을 끊었다. 검거된 유괴범은 빚에 몰려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노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학까지 졸업한 가정주부가 이렇게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크다. 옛날부터 우리 여인들은 태아에게 미칠지도 모르는 영향을 고려해 수태와 함께 작은 동물을 죽이는 것도 보지 않을 만큼 조신(操身)했다. 곧 어머니가 될 여인이 저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생명을 끊는 범죄에 가담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식의 사고에서 저질러진 이번 사건은 뿌리깊게 만연된 물신숭배 풍조와 가치관 전도의 사회상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범이 모두 잡혀야 범행 전체의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무모하고 잔인한 범죄에 다수의 공범이 가담했다는 점에서 이성을 잃은 집단광기를 보는 것 같아 두렵다.
경찰의 초동수사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로는 범인들은 나리양 부모와 전화접촉중 경찰 접근을 눈치채고 나리양을 살해한 것으로 돼있다. 범인을 검문하고서도 몰라보고 놓치는 등의 실수를 하지않고 초동수사에 보다 철저했더라면 나리양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괴범죄는 초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수사가 장기화하면 어린 생명을 희생시키기 쉽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전화와 첨단 통신수단을 이용한 범죄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체계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
어린이 유괴범죄는 성공률이 극히 낮은 범죄다. 이번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미성년자를 유괴살해한 범인에 대해서 법정형으로 사형 또는 무기징역만 규정해놓고 있다. 죄질에 비추어 그만큼 무겁게 처벌하자는 취지다. 나머지 공범들을 속히 검거해 유괴범은 반드시 잡히고 법정 중형을 받는다는 것을 사회 전체의 믿음으로 확립해 놓아야 한다. 돈을 노리고 어린 싹을 꺾는 이런 반인륜적 범죄를 막기 위해 모든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