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종잡을 수 없는 JP

  • 입력 1997년 9월 5일 20시 07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는 평소 말을 아끼는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직접화법 대신 은유와 풍자를 즐겨쓰는 그의 수사학(修辭學)에는 감칠맛이 있다. 그런 김총재가 5일 오전 한 두시간을 사이에 두고 전혀 궤를 달리하는 두가지 발언을 던졌다. 그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내각제를 전제로 한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의 협력의사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필요」라는 토를 달았지만 「대통령선거 연기」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의 이같은 「폭탄발언」은 곧바로 정치권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기자간담회 직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국민회의 창당기념식에 참석한 김총재는 정반대의 뉘앙스로 축사를 했다. 『정권교체는 하늘의 뜻이다』 『하늘도 신한국당을 버렸다』 『후보단일화에 최선을 다해 공동정권을 창출하자』는 것이 그 요지였다. 김총재의 「대선연기」 「김대통령과의 협력용의」발언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법한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는 김종필총재의 축사가 끝나자 마자 벌떡 일어나 당원들에게 손짓을 보내 기립박수를 유도했다. 또 김종필총재가 자리를 뜨자 행사장 밖 에스컬레이터까지 뒤따라가 그를 배웅했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김종필총재의 두 가지 발언은 내용의 시비(是非)를 가리기에 앞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늘도 버린」 신한국당과 그 당의 총재인 김대통령과의 협력제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 「후보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와 「대통령선거 연기」는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도대체 누구와 손잡고 무얼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나라를 큰 틀에서 다시 세워 새 출발을 하자는데 반대한다면 정치인(Stateman)이 아닌 정략가(Politician)』라고 말했다. 5일 그가 보여준 태도가 「정치인」과 「정략가」중 어느쪽에 가까운지 자문해 볼 일이다. 윤영찬<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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