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종세/美-日서 날아온 낭보

  • 입력 1997년 8월 4일 22시 26분


지난 95년 7월. 일본 열도는 온통 축제분위기로 들끓었다. 매스컴도 흥분 일색이었다. 일본 야구의 영웅 노모 히데오(野茂英雄·당시 26세·LA다저스)가 동양인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올스타로 뽑혔기 때문이었다. 노모의 올스타 선정이 고베지진 참사와 옴진리교 독가스 살포 등 충격적인 사건에 미일 통상마찰까지 겹쳐 우울한 분위기에 빠져있던 일본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 한국야구 저력 과시 ▼ 당시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노모의 쾌거는 일미간 자동차교섭에 합의를 이룬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격찬하고 『일본 정부는 노모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의 국가홍보 못지않게 노모 한사람이 올스타전에 나가 얻어낼 수 있는 국위선양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었다. 자동차 수출입 문제와 관련, 일본과 신경전을 벌였던 미국의 반응도 특이했다. CBS TV는 노모의 올스타 선발을 빗대 『일본이 드디어 미국에 야구까지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논평했다. 지난 1일 메이저리그에서 대망의 10승 고지에 오른 「코리안 특급」 朴贊浩(박찬호·24·LA다저스)가 내년 시즌 세계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타볼 만하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메이저리그 선발진입 첫해에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대기록을 세웠으니 내년에도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가능한 이야기다. 일본 프로야구 최다 세이브포인트(44SP)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나고야의 수호신」 宣銅烈(선동렬·34·주니치 드래건스)도 한국야구의 저력을 일본에 알리는 「스포츠 전도사」다. 그는 3일 18연속 구원에 성공, 지금까지의 센트럴리그 17연속 세이브포인트 기록을 경신했다. 뿐만 아니라 29세이브포인트, 0점대 방어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쾌속항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승전보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판의 역겨운 이전투구와 파산 위기의 기아사태 등 비틀거리는 국내 경제상황과 대비되면서 더욱 빛이 나고 있다. 야구선진국에서 「혼의 투구」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곧추세우고 있는 박찬호와 선동렬. 이들이 한결 돋보이는 것은 지난해까지의 성적부진을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엮어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박찬호가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은 지난 94년 초. 그러나 그의 장밋빛 「아메리칸 드림」은 처음부터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그 생활 18일만에 마이너리그로 떨어지면서 숱한 좌절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선수로선 환갑의 나이에 일본 프로야구의 모진 풍상에 시달려야했던 선동렬. 그 역시 굳어진 투구폼을 고치느라 2군으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감수하며 수도승과 같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박찬호와 선동렬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바로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뛰어난 선별안(選別眼)과 선수육성 시스템이다. ▼ 역경극복 인간승리 ▼ 지난 91년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고교친선야구대회에 나갔던 무명의 박찬호를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93년에 챙긴 LA다저스 구단의 「눈」과 거친 원석을 보석으로 빚어낸 「연금술」이 놀랍기만 하다. 또한 은퇴할 시기의 「할아버지 선수」 선동렬을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키워낸 곳이 바로 주니치 구단이다. 내년 시즌 사이영상 수상과 함께 메이저리그 올스타 자리를 노리는 박찬호와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야심의 선동렬. 이들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한국인의 기개를 마음껏 펼칠수있도록 우리모두가 뜨거운 격려를 보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종세(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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