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密約의 정치

  • 입력 1997년 6월 13일 20시 29분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 최근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주자들이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권력분산론이 그렇다. 무슨 말로 포장을 해도 기본적인 발상은 야합(野合)의 논리다. 여권 사람들은 그동안 야권의 내각제개헌론이나 공동집권론을 권력욕에 사로잡힌 나눠먹기식 흥정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권력분산론으로 피장파장이 돼버렸다. 한쪽은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한 당대당의 연합 고리로, 또 한쪽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승리나 탈락 경우의 제몫 챙기기 담합수단으로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노리는 목적은 다소 다를지 모르나 둘 다 정략적이기는 마찬가지다. ▼ 나눠먹기식 「권력분점론」 ▼ 권력집중이 빚은 부작용과 폐해는 한보비리와 대통령 아들의 국정농단사건에서 뼈저리게 체험한 바다. 그 결과 대통령 한사람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어떻게든 막아야겠다는 것이 이제 국민적 합의로 굳어진 상태다. 그러나 작금 집권당내부의 권력분산론은 당내 경선주자들간 합종연횡을 겨냥한 전술적 차원의 미끼같다는 낙인이 찍히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내용 또한 순수한 권력분산 보다 요직을 나눠먹자는 식의 권력분점론에 가깝다. 뜻밖의 상황변화로 개헌을 하지않는 한 올 12월에는 또한번 강력한 대통령중심제하의 대통령을 뽑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소불위(無所不爲)로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견제하고 권력집중에 따른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활발한 정책토론을 벌여야 할 때다. 이를테면 인사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나 국가소추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특검제 도입문제 같은 것도 검토대상이다. 이런 것들을 제쳐놓고 누구는 대통령, 누구는 국무총리, 누구는 국회의장을 맡자며 밀실에서 정치적 흥정부터 하려 든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정치적 밀약(密約)은 정치도의에도 어긋나지만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다. 일단 대통령이 되고 권좌(權座)에 앉으면 그가 누구든 금방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사전각서 같은 것을 쓸 수도 있겠으나 부질없는 일이다. 3당합당 때의 내각제각서도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현행 헌법의 내각제적 요소를 살려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분담을 하게 되면 개헌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권력분산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말하자면 이원집정부제적 성격이다. 그럴 경우 대통령후보가 러닝메이트격으로 차기 총리내정자를 내세우고 정부조직법을 고쳐 총리임기제를 도입하면 된다는 주장이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을 경우에만 통하는 가설이다. 더욱이 직선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총리가 거의 대등한 권한을 갖고 이원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과연 현행 대통령책임제 헌법정신에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양자간에 권력충돌이 인다면 그때의 국가적 혼란은 심각할 것이다. ▼ 섣부른 논의는 안된다 ▼ 무엇보다 가장 큰 함정은 야당 일각의 공동집권론과 마찬가지로 여당의 권력분산론 또한 자칫 권력분점으로 왜곡될 경우 책임정치의 원칙이 훼손된다는 점이다. 권력분산론이 결국 제각기 권한만 누리고 아무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책임분산론이나 공동무책임론으로 이어진다면 정말 큰 일이다. 국가권력구조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막중대사를 이렇게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미리 나눠먹기 발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일단 경선부터 치르고 대선후보가 결정된 뒤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대선공약으로 내놓아도 늦지 않다. 남중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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