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New]지나-지오등 애들 이름도 세계화 바람

  • 입력 1997년 6월 2일 08시 56분


수지(秀智) 지인(芝仁) 지나(志羅) 지오(志午) 주리(周利) 재리. 20여년 전에 부모가 자녀들에게 지어주던 이름과는 어딘가 다르다. 언뜻 보면 한자 이름이지만 서양식 이름으로도 손색이 없다. 국제화시대를 살아갈 자녀에게 외국인이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는 신세대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통적인 방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주에 맞는 이름을 짓기 위해 열심히 작명소를 찾기도 한다. 작명가들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승 은 경 범 회 열 효 찬 등과 같은 음절을 피하면서 사주에 맞는 글자를 찾느라 애를 먹는다. 서울 와룡동 보명당의 작명가 서백선씨(60)는 『요즘에는 이런 주문이 일주일에 10건 정도 들어온다』며 『요구하는 대로 이름을 지으려면 갑절 이상의 시간이 든다』고 털어놨다. 아예 「해리」 「소라」와 같은 이름을 미리 정해 오는 경우도 있다. 이 때에도 음양오행을 고려하고 한자획수 돌림자까지 맞추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자녀들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는 대개 외국인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우스꽝스럽게 발음되거나 발음이 어려워 상대방이 쉽게 기억하지 못한 경험들을 지니고 있다. 양석윤씨(31·서울 신촌동)는 카투사로 군복무하던 당시 미군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끼―운(Seokyoon)이라고 부르는 것을 3년 동안 참아야 했다. 양씨는 지난해 12월 첫 아들을 낳자마자 이름을 지오(Gio·志午)라고 지었다.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돌아온 김승현씨(31·서울 서초동)는 유학생활 내내 사람을 처음 만날 때마다 이름을 서너번씩 되풀이 발음해주어야 했다. 김씨는 지난 2월에 태어난 딸에게 미국인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지인(영어로는 Jeanne)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는 무역업 호텔업 종사자들이 아예 다니엘 스텔라 같은 서양식 이름을 하나 더 갖는 것은 이미 흔한 일. 또 미국인에게 영어를 배우거나 배낭여행을 다녀 온 경험이 있는 학생들 중에는 영어식 「별명」을 갖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중국인, 「야스무라」는 일본인이라고 생각되듯 이름이란 한 민족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런 이름이 많아지면 이름에서 「한국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박갑수교수(국어국문학과)는 『작명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인 만큼 이같은 경향을 막을 수는 없다』며 『하지만 자칫하면 길거리의 수많은 상호처럼 한국인의 이름도 국적 불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나연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