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한구/「막가파」와 경기부양책

  • 입력 1997년 4월 29일 19시 52분


젊은이 몇 사람이 폭력조직을 만들어 차마 사람이 못할 짓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그 폭력조직의 이름이 「막가파」였다. 이들은 주변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막나간다, 미래를 생각할 필요없이 현재만 편리하면 되는게 아니냐, 어찌됐든 튀어보이고 싶다는 접근방법을 가진 게 특징이다. 무엇인가 절박한 상황에 빠진 상태에서 마약의 도움을 받든지 외곬 「철학」을 가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면충돌」의 교통사고를 낸 한국운전자들도 막가파의 아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엉터리 건설공사를 예사로 하는 사람들도 막가파의 아류다. 그래도 이들은 우주생성의 이치나 순환의 원리를 잘 모르는 수준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해도 잠시 흥분하면서 지나칠 수 있다. ▼ 단기처방의 위험성 ▼ 그런데 은근히 막가파의 행태를 보이는 지식인들이나 사회지도자들이 큰 문제다. 사람이든 사회든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 한시바삐 탈출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욕구는 오랫동안 달콤한 맛에 젖은 후 어려움이 오래 지속될수록, 또 탈출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힘들수록, 그리고 탈출시기가 임박할수록 강해지게 마련이다. 자연현상에서도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폭우가 내리기 전일수록 무더운 법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그렇다. 지난 1년내지 1년반 동안 경기는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많은 경제주체들은 허리띠 졸라매기와 생산성 올리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자고나면 도산이니 감원이니 해먹었느니 불쾌한 소식 뿐이다. 모두 몇년 전의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누구에겐가 분통을 터뜨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또 지금 자기가 변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항목을 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라고 생각할만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항상 점잖게 생긴 마약판매상이 나타나서 막가파 방식의 처방을 제시하게 마련이고 또 사회는 그것을 채택하기 쉬운 게 현실이다. 근래만 하더라도 3저호황 직후의 경기하강기에, 그리고 현정부 출범 후 몇가지 사정과 개혁의 진행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틀이 깨지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경기부양책이라는 마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결국은 일찍 고칠 수 있는 경제체질이 난치병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 묘수보다 상식 적용을 ▼ 그래도 몇년 전에는 3저호황 때 벌어놓았던 것이 남아 있었고 국제환경이 급격히 호전되는 천운이 따랐지만 만일 이번에도 경기부양이라는 마약을 취하면 엄청난 내성(耐性)을 지닌 고질병을 치료하느라 다음 정권에서 온국민이 큰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통화량 급증을 통한 일시적 금리인하, 인위적 환율평가절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임금조정 방식이나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추진하는 단기적 외자유치, 갑작스런 사회간접자본 투자확대, 집단이기주의 요구에의 굴복 등은 비유컨대 죽기 직전의 환자가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 정도의 효과밖에 가져오지 못한다. 하도 답답하니까 별의별 궁리를 다한다는 게 자칫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두는 것 같은 실수를 하기 쉽다. 그동안 경제체질 개선방안으로 나왔던 정책들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나 살펴서 착실히 실천하고, 경제사회적 불안심리 확산을 막으면서 모든 경제주체들의 변신을 요구하는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역시 바른 길이다. 현단계에서의 경제활성화는 「콜럼버스의 달걀세우기」와는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 묘수를 찾기보다는 상식을 실천하는 것이 더 확실한 해결책이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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