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에스에이 투데이지(11일자)가 전하는 북한의 식량난 실상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홍수피해가 심했던 신의주 안주 지역의 주민들은 풀과 나무껍질을 삶아 쑨 죽 한 그릇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대신하고 있고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로 발육이 정지된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니, 『어쩌다 저 지경이 됐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신문 1면과 6면에 실린 몇장의 사진들은 참상을 더 생생하게 전해준다. 어머니가 굶어죽는 바람에 고아원에 맡겨졌다는 갓난 아기들이 허기에 지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사진이나, 하루 끼니용으로 들판에서 뜯은 풀과 나무뿌리를 앞에 놓고 계면쩍어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갓난 아기와 할머니를 집중조명케한 것도 북한다운 「사실의 희롱」이 아닐까 싶다.
이런 사진들은 자연스럽게 CNN을 떠올리게 한다. 굶주림의 참상이 CNN을 타고 미국인들의 안방으로 흘러들어갔다면 반응은 어땠을까. 아마 신문에 실린 몇 장의 사진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특정 이슈가 TV를 탈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월남전 반대운동도 월남전에서 사망한 미군들의 시신을 담은 이른바 「보디 백」(body bag)의 공수 장면이 TV를 통해 안방까지 들어감으로써 불이 붙었다.
북한 식량난 또한 같다. CNN이 아니라 어떤 TV매체라도 굶어죽어가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잡아 미국인들의 안방에 쏘아 보낸다면 그 반향은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인 북한은 TV매체는 물론 어떤 서방 언론에 대해서도 문을 활짝 열지 않고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지와 여기자를 선택한데는 이 신문이 컬러사진을 많이 쓰고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식량부족의 다급함을 호소하면서도 미국의원단에 호화식사를 대접하고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서방 언론들에는 생생한 실상취재를 막고 있는 것 등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재호<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