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46)

  • 입력 1997년 4월 5일 09시 20분


제7화 사랑의 신비〈32〉 공주는 왕을 재스민 꽃 시렁 바로 밑에 앉도록 권했다. 따라서 말하는 새가 든 새장은 왕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었다. 왕이 자리를 잡고 앉자 공주는 진주가 든 오이를 황금 접시에 담아 들고 왕 앞에 바쳤다. 왕은 오이에 쌀이 채워져 있지 않고 진주가 채워져 있는 걸 보고 몹시 놀랐다. 그리하여 왕은 두 왕자에게 물었다. 『참으로 신기하다. 언제부터 그대들은 쌀 대신 진주를 쓰게 되었는가?』 이 말을 들은 파리자드는 너무나 부끄러워 탁자 밑으로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말하는 새가 말했다. 『오, 위대한 임금님 호스루 샤여! 오이에 쌀 대신 진주를 채워 넣은 것이 그리 이상합니까? 그러면서도 페르시아의 왕비가 낳은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모두 동물로 바뀌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현세의 임금님이시여, 이십 여 년 전에 당신은 그렇게도 믿기 어려운 일들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셨으면서도 쌀 대신 진주를 채운 오이 앞에서 그렇게 놀라실 권리가 있습니까?』 왕은 깜짝 놀라며 말하는 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왕은 말하는 새가 하는 말에 심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말하는 새의 이 말에 더욱 심한 충격을 받은 것은 파리자드와 그녀의 두 오빠였다. 왜냐하면 말하는 새가 갑자기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을 감히 왕 앞에서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는 자못 엄숙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우리들의 임금님이시여. 이십 여 년 전 어느날 밤 어느 가난한 집 창문 뒤에 숨어서 들으신 말씀을 당신은 잊으셨습니까? 착하고 예쁜 열일곱 살의 처녀가 했던 말을 잊으셨습니까? 만약 잊으셨다면 파리자드의 노예인 제가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리지요』 파리자드는 걱정이 되었다. 새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말들을 마구 해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리자드는 불불 엘 하자르가 든 새장을 떼어다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려고 했다. 그러자 왕은 파리자드에게 새를 그 자리에 그냥 두라는 뜻의 손짓을 했다. 새의 그 무례한 말을 들으면서도 왕은 어찌 된 일인지 별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말하는 새는 이제 이십 여 년 전에 왕이 본 처녀의 그 상냥한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말했다. 『그날밤 당신이 본 그 가난한 처녀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언니들, 그게 가능하다면 난 우리의 군주이신 임금님과 결혼을 하고 싶어. 그렇게 되면 난 그분께 순결을 바치고 축복받은 자손을 낳아드리겠어. 알라께서 허락해주실 우리의 아들들은 틀림없이 아버지의 명예에 걸맞은 훌륭한 아이일 거야. 숲 속에 뛰노는 사슴같이 아름다운 사내 아이들 말야. 그리고 나는 딸도 갖게 될 텐데 딸은 틀림없이 아름다울 거야. 머리 카락의 한쪽은 금빛이 나고 다른 한쪽은 은빛이 나는 예쁜 딸 말이야. 그애가 울면 그 눈물은 진주, 그 웃음은 디나르 금화, 그 미소는 장미 꽃 봉오리일거야」하고 말입니다』 말하는 새가 여기까지 말하자 왕은 갑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십 여 년 전의 그 가슴 아픈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때 그의 모습은 한 사람의 가련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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