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사고이야기]電車개통 5일만에 소년치어 즉사

  • 입력 1997년 3월 29일 09시 02분


1899년 4월 초파일 서울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처음 등장한 전차는 이 땅에 교통혁명을 일으켰다. 한꺼번에 20여명의 사람을 태운 채 공중의 전깃줄에서 불꽃을 튀기며 땅에 묻힌 쇠줄을 타고 제 스스로 달려가는 이 집채만한 쇠당나귀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종로거리는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다 개통5일만에 종로 포전거리 앞을 지나던 전차가 달려드는 다섯살난 어린아이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치어 즉사케 했다. 난생 처음보는 처참한 광경에 분노한 행인들이 전차를 에워싸자 겁에 질린 일본인 운전사는 전차를 팽개치고 도망가버렸다. 성난 군중은 사고를 낸 전차와 그 뒤를 따라와 멈춰 서 있던 전차까지 넘어뜨린 뒤 불살라버렸다. 그래도 화가 안풀린 군중이 동대문옆 전차회사로 몰려가 『사람죽인 전차 운전사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벌여 결국 순검들이 동원돼 군중을 해산시켰다. 서양사람과 부호 세도가들이 전차에 기생들을 태우고 종로거리를 누비는 통에 눈꼴 사나운데 처음 보는 끔찍한 사고까지 나자 민초들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 후 일본운전사들이 전차운전을 거부하는 바람에 전차회사 사장인 콜부런은 미국인을 데려다가 한동안 영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서울은 심한 가뭄으로 농사가 말이 아니었는데 『바로 시커먼 괴물(전차)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땅에 묻힌 전차 철까치(레일)가 물기를 빨아들이고 하늘에 매달린 전깃줄에서 튀기는 불꽃이 물기운을 전부 말라버리게 만드니 어찌 가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全永先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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