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구가 떠오른다/루마니아 현장]초라한 차우셰스쿠묘

입력 1997-03-24 08:27수정 2009-09-27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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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레슈티〓홍권희·김상영특파원] 부쿠레슈티 근교 겐체아 공동묘지에서는 권력의 허망함이 배어나온다. 20여년간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했던 공산체제 마지막 대통령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이곳에 묻혀있다. 권력의 2인자였던 그의 아내 엘레나와 후계자로 간주됐던 아들 니쿠가 묻힌 곳도 이곳이다. 인근 장군묘역과 한눈에 구별되는 겐체아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서민묘지. 유혈사태를 불러왔던 89년12월 혁명의 와중에서 총살당한 차우셰스쿠 부부의 시신은 함께 묻히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50m쯤 떨어진 각자의 무덤에 내팽겨치듯 버려졌다. 맨 땅이 그대로 드러나있어 별도 표시가 없으면 무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지경이다. 차우셰스쿠 묘에는 작년에야 옛 공산당 간부들이 묘비 하나를 세워줬다. 엘레나의 묘에는 이름을 적은 나무십자가 하나만 덜렁 놓여있다. 그나마 무덤위에 쓰러져있어 돌로 괴어 세운 뒤 사진을 찍어야 했다. 현지인의 설명은 냉정하기만 하다. 『황태자로 군림했던 니쿠는 체제붕괴후 비리혐의로 1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건강이 악화돼 92년 석방됐어요. 그러나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죽기 직전에야 옛 동료들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을 찾을 수 있었대요』 공동묘지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면 의회(議會)궁이 나온다. 일명 차우셰스쿠궁. 미국 펜타곤(국방부 건물)에 이어 단일건물로는 세계 두번째 규모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이 궁은 차우셰스쿠가 북한의 인민문화궁전을 구경하고 돌아와 83년부터 짓기 시작했다. 70%정도 지었을때 혁명을 만나 한동안 공사가 중단됐다가 최근에 재개돼 현재공정은 80% 수준. 11개층 가운데 1,2층만 사전예약 관광객에게 개방한다. 이방 저방 둘러보는데 40∼60분이 걸린다. 『건물 전체에 방이 1천개 있구요, 샹들리에가 3천5백개 있어요. 카펫은 1천5백장이 깔려있는데 가장 큰 건 무게가 15t이나 나가요. 저기 좀 보세요. 복도 길이만 1백50m인데 유럽에서는 가장 길답니다』 스무살의 안내원은 그 많은 숫자들을 잘도 외워댄다. 실크가 어쩌니, 금과 대리석이 어쩌니 자랑섞어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차우셰스쿠가 남긴 두가지 「명물」, 어마어마한 궁과 찌그러진 독재자의 무덤은 부쿠레슈티 변두리를 활보하는 들개에 놀란 외국관광객들을 또 한번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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