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다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동아일보 입력 1997-03-23 19:45수정 2009-09-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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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참으로 걱정이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차남 賢哲(현철)씨의 사죄도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한보사태와 김현철의혹은 자고 나면 2천억원 리베이트설, 현철씨 측근 청와대 무적(無籍)근무 등 충격적 의혹이 더해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 무한경쟁시대에 전국민이 전에 없는 각오로 국가경쟁력 강화에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나라가 난파선처럼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가 큰일이다. 우리 삶의 토대인 경제는 갈수록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데도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정치권은 몇달째 온통 한보사태와 현철씨 비리의혹에 매달려 소모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고 기로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한보사태 특히 현철씨 비리의혹부터 엄정하게 처리하는 일이 급하다. 정국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의 분노와 불신, 갈등과 좌절을 하루 빨리 치유해 온 국민이 경제회생에 힘을 쏟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대통령이 여기서 또 한번 결연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땅에 떨어진 정부신뢰 지금 우리 경제는 길고 어두운 불황의 터널에 갇혀 있다. 정경유착 특혜금융 부실경영이 겹쳐 대기업 부도가 잇따르고 중소기업 연쇄도산이 우려되고 있다. 대기업 도산은 은행 부실화를 심화시키고 국내 은행에 대한 국제신인도를 급격히 떨어뜨려 외환위기설까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7%를 웃돌던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4%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외채는 작년말 1천1백억달러를 넘어섰고 실업률은 올 연말까지 3%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경상수지 적자도 지난 2월까지 하루 1억달러씩 늘어났다. 거기에다 대기업이 계속 넘어질 것이라는 예상까지 겹쳐 경제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경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근본적으로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호황기에 재무구조 개선을 게을리 하고 계열기업 확장 등에 몰두한 나머지 기업체질이 불황을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진 것이다. 지난 87년 6.29 이후 급격하게 활성화된 노동운동을 거치면서 기업경영환경이 고비용 저효율구조로 바뀐 것도 경쟁력 상실의 한 원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 국제수지 방어에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정부지출 삭감, 사회간접자본 투자연기 등 긴축 저성장을 지향하면서 국민들의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호소가 설득력과 실행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따르고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사회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국민은 물론 기업인들이 정부를 믿으려 하지 않고 기업경영 의욕을 잃고 있다. 경제는 국민생활의 바탕이다. 경제를 더 이상 표류하도록 놓아둬서는 안된다. 경제가 무너지면 국민들은 일터를 잃고 그로 인한 실업은 사회불안을 가중시킨다. 한번 무너진 경제는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 국제적인 신용도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김영삼정권은 임기가 끝나 물러나면 그것으로 그만일 수 있지만 무너진 경제는 두고두고 국가와 국민의 부담으로 남는다. 정치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정치권이 한보사태와 김현철의혹의 수렁에 빠져 끝없이 정치력을 소모하고 있는 한 악화일로에 있는 경제의 회생은 어렵다. 결국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인 경제에 새롭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정치가 혼란에서 벗어나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하여 해결해야 할 절박한 위기의 본질인 것이다.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달리 없다. 날로 증폭되는 한보의혹과 김현철추문을 하루 빨리 사법적으로 매듭지어 정리하고 정부가 신뢰를 회복해 뼈를 깎는 각오로 경제회생에 앞장서는 수밖에 없다. 사과 몇마디로 정부와 대통령의 잃어버린 지도력을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망상이다. 대통령의 아들이 마치 대통령처럼 행세하면서 국정 전반을 휘젓고 다닌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이를 덮어둔 채 다함께 경제 살리기에 나서자고 호소한들 따를 국민은 없다. ▼사사로운 情 버려야 대통령이 위기의 본질을 똑바로 봐야 한다. 그리고 한보사태와 김현철의혹의 진상을 철저히 파헤쳐 아들이라도 죄가 드러나면 법에 따라 추상같이 벌하겠다는 의지로 다시 한번 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비록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정권말기 권력누수현상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해도 대통령은 아직 국정 최고책임자다. 대통령이 이 막중한 책임을 아들문제 때문에 회피할 수는 없다. 그 책임 수행의 첫번째 우선순위가 김현철문제의 조속한 처리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권력의 눈치만 살피던 검찰도 한보수사팀을 지휘해온 대검 중수부장이 교체되면서 공명정대하고 투명한 재수사 의지를 다짐하고 나섰다. 우리는 이것이 또 한번의 김현철 면죄부 주기 절차가 아니기를 바란다. 한보청문회에 임하는 여당의원들도 김현철의혹의 진상을 철저히 캐내는 것이 궁지에 몰린 대통령과 난국에 처한 국가를 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거듭 촉구한다. 시국을 안정시키고 침체에서 허덕이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자기희생의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신뢰와 지도력을 회복하고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국가를 이끌어가려면 대통령이 사사로운 정(情)이나 정략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을 묶고 있는 족쇄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지금 위기에 놓인 나라를 살리려면 그 길밖에 없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와 국민은 정권이 바뀌어도 영원히 남아 뻗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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