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우울하고 머리가 아프다. 매사가 귀찮고 흥미가 없다. 술 담배가 늘고 아내도 의심스럽다. 가족 친지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스스로도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고개숙인 남자」가 되어버린 고학력 중년남성들이 호소하는 「은퇴증후군」이다. 심한 경우는 자살충동마저 억제하지 못한다. 실직의 충격은 이렇게 한 인간의 좌절을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정불안 사회불안으로까지 이어진다
▼실업문제의 심각성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럽연합(EU)정상회의가 열릴 때마다 첫번째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실업문제다.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감량경영은 서구형 복지모델이나 일본식 종신고용제 같은 과거 공동체적 노사관계를 옛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불황이 장기화하고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감량경영바람이 전산업계로 확산되고 군살빼기 감원이 일반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실직의 위험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그룹이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을 실시하지 않는 대신 간부직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고용안정을 위해 근로자들의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고육책이다. 감원이냐 임금동결이냐의 양자택일에서 회사와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임금동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임금인상보다 일자리가 더욱 중요해진 때다. 고용안정노력은 선진국에선 노조가 더 적극적이다. 임금동결로도 안 될 때는 근로시간단축으로 실질적인 감봉을 감수하면서 고용안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독일의 근무시간단축제가 그렇고 프랑스와 영국의 파트타임제, 일본의 근로자 전환배치 및 변형근로시간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노사(勞使)의 고통분담이 불가피해진 시점이다. 노사 모두 지혜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