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51)

  • 입력 1997년 2월 23일 20시 08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6〉 아니, 누군가로부터 한 번쯤은 이 남자가 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저쪽 언덕 위에서 독립군의 오토바이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그쪽을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결국 이렇게 보이고 마는군요. 이제 자리를 피해주시죠. 아니면 제가 피하거나』 그녀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길 쪽으로 돌아섰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댁한테 갈 겁니다』 뒤에 선 채로 남자가 말했다. 『왜죠?』 『그런 말까지 듣고 이렇게 물러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거야 그쪽의 자유겠지만 이제 오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군요. 보여야 할 용기는 서로 충분히 보였으니까요』 그 사이 오토바이가 아래로 내려왔다. 아까 남자가 자동차를 세운 자리보다 조금 더 앞쪽이었다. 그는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도 나무 그늘 아래에 어색한 자세로 서서 그의 오토바이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오토바이 옆으로 다가와 섰다. 『타』 독립군은 잠시 헬멧을 벗어보였다가 다시 그것을 머리에 썼다. 조금씩 깊어가는 가을 햇살은 여전히 남자의 자동차에 하얗게 부서지듯 반사되었다. 『꼭 잡아』 그녀는 처음으로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잡았다. 오토바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어딜 가는 거죠?』 그의 등에 한쪽 옆얼굴을 기대며 그녀가 물었다. 『아무데나』 뭔가 화가 난 듯한 목소리였다. 『그런 데가 어디 있어요?』 『그런 데가 없으면 거기 말고 다른 데 아무 데나 가고』 『화났어요?』 『아니』 『그런 것 같은데요?』 『아니니까 말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아무 데나요』 이번엔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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