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長燁(황장엽)비서가 남한으로 망명하려 한다는 엄청난 소식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저 불안하고 앞으로 남북간에 벌어질 일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 이유는 크게 보아 두가지다.
첫째는 이제 북한이 정말 망하기 시작하는 모양인데 그냥 혼자 조용히 무너지면 좋으련만 남쪽에 해코지를 하면서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다. 또 하나는 북한은 그렇다 치고 과연 우리에게는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우려다.
▼ 「무자극 무양보」정책 ▼
결국 국민들의 걱정은 바로 남북한의 위기관리능력에 있다. 기분나쁘게도 주변국가들마저 같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잠수함사건 직후 당시 미국무장관이 남북한 양쪽에 행동의 자제를 요구한 것과 이번 황장엽사건과 관련해 중국 외교부가 거듭 양쪽의 행동에 신중을 강조한 것이 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 정치권만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다양성과 대립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기이하게도 느껴진다.
먼저 북한사정부터 보자. 북한이 대내 대외환경변화에 통제능력이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남북한관계에 임한 것은 5년전 남북한기본합의서를 만들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북한으로서는 무리였으며 그 결과 기본합의서는 발효 즉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북한은 남북한의 체제경쟁에서 생존유지전략으로 전환했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채택된 것이 핵위협과 남한기피, 대미 직접협상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위기관리의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없었고 여기에 金日成(김일성)의 사망과 잇단 수재로 내부상태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말았다. 남북한 접촉이 金正日(김정일)의 정권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북한이 생각하는 한 대화에 의한 남북관계개선과 평화체제구축은 아무리 강조해도 헛일이다. 이는 과거의 안정된 북한을 다루듯이 지금의 북한을 다루어서는 안됨을 의미한다.
현시점에서 당분간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북정책은 「무자극 무양보」정책이 아닐까 싶다. 즉 체제붕괴 방지에만 몰두해 있는 북한에 어떠한 제의를 해도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는 방법외에 도리가 없다. 우리 체제의 성격상 민간부문에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지만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이 까닭없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하면 개인적인 언급이 정책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한 북한의 붕괴는 가속화할 것이고 따라서 남쪽이 자극을 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도발행위는 빈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북한의 위협에 양보해서도 안된다. 방위세를 크게 징수해서라도 국방력을 강화하고 군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한편 미국과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은 우리가 나서서 촉진할 이유도 없지만 막을 이유도 없다. 이들의 관계개선에 필요한 비용은 우리가 아닌 당사자들이 지불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반도의 안정은 동북아안보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美―北(미―북)수교가 이루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동북아 다자안보협력기구가 북한을 포함한 역내국가들 사이에서 발족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위기관리능력 길러야 ▼
북한의 위기는 비록 투영되는 내용과 정도는 다르겠지만 남한에도 위기일 수 있다. 남한의 위기관리능력만 탁월하다면 사실 북한이 어떤 진통을 겪든 국민들의 불안은 훨씬 경감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북한사태와 관련해서 불안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히려 국내정치에 있다. 남한정치의 후진성이 마침내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개혁을 추구한다고 나섰던 세력마저 구세력 못지않게 이미 썩어버린 사실이 한보사태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동요하고 있다. 정치가 이래서는 백가지 대북정책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이 든다.
유세희(한양대교수·아태지역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