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이탈리아 밀라노

  • 입력 1997년 1월 9일 20시 49분


밀라노에 부임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출근길에 교통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일이 있다. 교통경찰의 수신호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된 실랑이였는데 정작 그것이 수신호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다. 네거리에서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려는 순간, 교통경찰의 지나가라는 듯한 손짓에 빨리 지나갔는데 차를 세우더니 신호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손짓으로 지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설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면허증이니 차량등록증이니 신분증이니 온갖 서류를 요구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때 손짓은 수신호가 아니라 옆에 있는 동료 경찰과 이야기하면서 흔들어댄 제스처였다. 이탈리아인들의 손짓은 대화 중 없어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표현수단이다. 대화중 손 어깨 심지어는 머리까지 사용한다. 이탈리아인들이 대화 중에 손을 얼마나 사용하는지에 대한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인 영국인 미국인 첩자가 독일 비밀경찰에 체포돼 각자 심문을 받았다. 두 나라 첩자는 쉽게 비밀을 털어놓았으나 이탈리아 첩자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이유가 걸작이다. 말을 하고는 싶었으나 두 손을 꽁꽁 묶어 놓았기 때문에 손을 사용할 수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는 것. 작은 동작에서 큰 동작까지 특별한 의미없이 대화중에 연방 손을 흔들어대는 것은 흉내내기도 힘들 정도다. 손 제스처의 진수를 보려면 텔레비전 쇼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된다. 인기 여자 MC가 출연하는 광고를 보다 손짓을 세어본 적이 있는데 20여초 광고시간 동안 대충 세어도 열번은 넘었다. 이들의 손 제스처를 미리 알았더라면 교통경찰의 손동작을 오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는 나 자신도 익숙해진 이들의 제스처를 가끔 따라할 때가 있다. 신 우 용(밀라노 무역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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