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새를 찾아서」/윤명제 지음

  • 입력 1996년 12월 25일 20시 18분


소설가 윤명제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을 통해 등단한 여성 소설가들이 만든 모임에서였다. 소설가란 본래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이라 모이면 갖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느 날 윤명제가 한 이야기에 그만 몹시 놀랐다. 『이상한 일인데 살인자들의 손은 하나 같이 아주 곱고 자그마하고 예쁘더군요』 소녀시절에 온 학교를 통틀어 가장 예쁜 손을 가진 학생이라는 소릴 들었던 나는 기이한 충격을 느꼈다. 물론 손이 예쁜 사람들이 모두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째서 살인자들의 손이 그토록 한결같이 곱더라는 것인가. 흡사 인간 존재의 검은 심연을 일별한 듯한 느낌으로 내 손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윤명제는 소설가이자 현재 국립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임상심리학자다. 그래서 그런 삶의 현장에서 흘러나온 그의 소설들은 흡사 영양제 약병들이 늘어서 있는 약장 속에 홀로 끼어 있는 한 병의 극약 같다. 강렬하고 자극적이고 단숨에 우리 존재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속도를 지닌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유명인사가 관계당국에 구속되면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그 사실을 알 뿐이지만, 윤명제는 자신의 상담실 책상앞 의자에 주저앉은 그와 맞바로 얼굴을 대한다. 정신구조가 흐트러진 환자들과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빚어내는 불화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의 도움을 구하며, 심신박약자(心神薄弱者)나 심신상실자(心神喪失者)들에게는 형(刑)을 감경하거나 면제해 주도록 규정한 「형법 제10조」규정에 의거해서 법의 처벌을 모면해 보려는 흉악한 범죄자들 또한 그의 책상 앞에 앉아 혼신의 노력으로 미친척 잔머리를 굴리기도 한다. 거미가 거미를 낳고 사자가 사자를 낳듯, 윤명제가 몸 담은 그토록 첨예한 삶의 현장은 그로 하여금 눈매 예리한 사진사가 찍은 사진들처럼 생생하고 날카롭게 우리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소설들을 낳게 했다. 그는 단단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세상의 상처를 통로 삼아 세상의 이면을 통찰한다. 그리고 진폭이 넓은 관심의 추에 얹혀 병원 담을 뛰어넘어 미래로, 인수봉으로, 어용 문인의 생애로, 대학의 만년 시간강사의 고뇌로 다양하게 그 현장을 확장해간다. 「눈이 신비한 새」 올빼미를 찍으려고 해저문 마둔 저수지 물가에 선 아마추어 사진작가이자 정신과 여의사인 희수. 나는 지금 그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저녁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눈앞에 보는 듯하다. 그 여자가 병원 안에서 줄창 달고 다녔던 「오버코트의 단추」만큼 큰 귀고리가 지녔던 비의(秘意)도…. 이제 윤명제의 소설이 왜 읽는이의 마음을 거세게 치는지를 알겠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우리들의 상처와 고통과 슬픔을 넘어선 것, 곧 우리 삶 자체와의 화해이기 때문 아닌가. 세상의 하늘에는 언제나 화해라는 이름의 새가 날고 있다. 단지 우리가 때때로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송 우 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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