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토착비리 싹부터 잘라야

  • 입력 1996년 12월 6일 19시 57분


민선 구청장이 심야 퇴폐업소 업주들과 조직폭력배들로부터 협박을 당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퇴폐 불법영업 단속을 그만두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 나오지 못하도록 할 것이며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이 4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지역의 일부 유력인사들이 적당한 선에서 업주들과 타협할 것을 종용했다는 사실이다. 민선 구청장은 지역 자치행정의 책임자로서 민생을 보살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관내 유흥업소의 퇴폐 불법영업 단속은 그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지자체장의 정당한 업무수행이 폭력조직의 방해를 받고 그 뒷전에 웅크린 비호세력에 의해 제지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구 남구청장 협박사건은 평소 염려했던 토착비리의 한 행태가 사실로 나타난 것으로 이 지역만의 특수상황이 아닐지도 모른다. 공권력이 「조직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는 오래다. 지난 7월에는 대통령이 직접 조직폭력 근절을 내각에 지시했다. 검찰이 조직폭력배 및 비호세력을 뿌리뽑겠다고 다시 다짐한 것도 얼마전이다. 그런데도 폭력조직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한 지역의 최고행정책임자를 4개월이나 협박해왔다는 것은 그동안의 조직폭력과의 전쟁이 허구였음을 말해 준다. 검찰과 경찰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구청과 합동으로 불법영업을 단속해온 경찰은 과연 조직폭력배의 준동을 몰랐으며 검찰 또한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마피아식 기업형 폭력조직의 세확장을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직무태만이다. 검경이 뒤늦게 수사전담반을 편성해 수사에 나섰다고 하지만 그런 자세라면 한차례 투망식 단속에 그칠 것이 뻔하다. 이번 대구 남구청장에 대한 협박사건은 단순한 민생침해사범이 아닌 국가공권력과 자치단체의 정당한 행정권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또한 그 배후에는 엄청난 비호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검경의 수사는 그같은 배후세력을 밝혀내 조직폭력의 온상과 뿌리를 철저히 뽑아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같은 비호세력이 검경내부에는 없는지도 엄정하게 가려야 한다. 최근의 폭력조직은 과거처럼 유흥업소에 기생하는 수준이 아니다. 직접 업소를 운영하거나 건설회사 백화점 경영 등의 합법적인 기업활동을 가장하면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현재 전국의 조직폭력배는 총4백3개파에 1만1천여명으로 추계된다. 이중 세력이 큰 폭력조직은 특정 정치세력 또는 지역토착세력과의 유대를 강화해가고 있다고 한다. 이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지금의 폭력조직이 일본의 야쿠자나 러시아의 마피아, 홍콩의 삼합회와 같은 범죄조직이 되거나 이들과 긴밀히 결합할 때 그 폐해는 민생침해나 토착비리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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