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마음의 군살 빼기

  • 입력 1996년 12월 4일 20시 10분


처녀때 날씬하던 몸매가 출산후 불어나 신경이 쓰인다. 아줌마티가 나는 몸매를 다듬는다고 밤낮으로 고민하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제는 포기하다시피 하고 지낸다. 결혼 10년에 세아이를 둔 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요즘 여성이나 남성이나 살을 빼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도 기업도 경쟁력 10% 증가를 위해 구석구석 거품을 걷어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며칠전 친구가 33평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전화를 받고 조그만 주전자 하날 사들고 방문했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친구는 별로 살도 찌지 않은 몸매를 가꾼다고 실내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거실과 방들을 둘러보니 그 친구 집이 아닌 다른 집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옛집에서 보던 기존의 가구와 집기들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게 하나같이 새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한지 7년도 채 안된 친구는 당시에 구입한 가구들도 꽤 고가품이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는데 평수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왔다는 이유로 장롱이며 거실의 응접세트까지 모두 새것으로 바꿨다. 가족이라야 아이를 포함하여 세식구에 불과한데도 냉장고를 외제인 월풀 대형으로 들여놓고 TV도 일제로 바꿨다. 차를 마시며 나눈 그 친구와의 대화는 더욱 가관이었다. 친구의 남편이 다니는 전자회사에도 요즘 명예퇴직 바람이 불었는데 자기 남편도 감원대상에서 예외는 아닐 거라며 걱정을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생각한다면 어찌 외제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수 있단 말인가. 남편의 명예퇴직을 아내가 재촉한 꼴이 아닌가. 집에 돌아와 10년전 결혼때 마련한 가재 도구들이 20평 아파트에 올망졸망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손때 묻은 가구며 전자제품들을 정성들여 닦으며 남편의 「직장생활 무사」를 비는 마음 뿐이었다. 세아이들의 장래와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살림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육체의 살을 빼기 이전에 정신속에 배어 있는 군살을 빼야겠다는 각오와 함께…. 서 혜 경(인천 연수구 동춘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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