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엿가위」 무형문화재 윤팔도씨

  • 입력 1996년 12월 3일 19시 59분


「尹鍾求기자」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구성진 엿불림 노래가 청주 중심가에 울려퍼지면 엿을 실은 리어카 뒤로는 동네아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한복바지저고리에 중절모와 흰고무신차림의엿장수는 자기 노래에 취해 쌍가위장단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윤팔도씨(68). 초등학교 3년을 마친 13세때부터 엿장수로 나선지 56년째다. 『전국 면소재지 외딴섬까지 안가본 곳이 없어요. 조선사람 치고 엿 싫어하는 사람 없기 때문이지요. 이 이름도 팔도강산 안다니는 곳이 없다며 팔도의 엿 손님들이 붙여준거요. 윤석준이 원 이름이오』 그는 자칭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엿장수」다. 87년에는 특유의 엿가위장단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부터 엿장수가 엿을 팔면서 불렀다는 엿불림 노래를 현재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뿐이란다. 그의 리어카는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하도 많은 사람을 몰고 다니다 보니 여기저기서 광고문의가 빗발친단다. 윤씨의 「재물운」이 트인 때는 85년. 전국노래자랑 인기상이 계기가 됐다. 쌍가위장단에 신명나는 노랫소리, 특유의 옷차림으로 보는 사람들을 포복절도케 하자 여기저기서 밤무대 요청이 들어왔다. 엿판은 포기하고 서울 극장식 나이트클럽을 주무대로 주객들의 흥을 돋웠다. 서울 진출 5년만에 세 아들에게 아파트 한채씩 마련해줄 정도로 왕창 벌었다. 부인이 『또 엿장수하면 죽어버리겠다』며 말렸지만 쌍가위는 그의 숙명이었다. 91년 7만원만 달랑 들고 혼자 청주로 내려와 여인숙에 짐을 풀었다. 그는 금세 청주명물이 됐다. 몰고다니는 사람만큼 돈이 굴러들어왔다. 2년만에 52평 단독주택을 마련할 정도로. 이 시대 최고의 엿장수라는 자부심을 가득 안고 그는 오늘도 청주 육거리를 누빈다. 힘닿는 데까지 엿장수를 하다가 여생을 마치겠다는 각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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