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10)

  • 입력 1996년 11월 10일 20시 56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17〉 교차로로 들어서려는데 신호등이 초록에서 노란색으로 바뀐다. 늦은 시각이라 계속 달려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나는 그냥 신호 대기선에 차를 댄다. 바람이 불자 가로수에서 잎이 몇 개씩 길 위로 떨어져 내린다. 어두운 보도 위로 신문지 한장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신문지는 가로수의 밑동을 붙잡고 거기에 기대려고 한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게 흔들어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가로수에서 떨어져나와 이번에는 택시 정류장의 쇠막대를 붙잡는다. 다시 바람이 신문지를 따라온다. 신문지는 파들파들 떨며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에는 쇠막대에서 손을 떼고 다음번 가로수의 밑동을 붙잡는다. 거기에서도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바람에 떼밀려 길바닥으로 쓰러져버린다. 가까스로 일어나서 쓰레기통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차도로 밀려나고 만다. 나는 그 신문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차도로 밀려난 신문지는 이리저리 날리며 또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신호가 바뀌어 차가 출발하자 공중으로 한번 풀썩 날아오른 다음 그대로 차바퀴에 깔려버린다. 스산한 늦가을 밤거리를 이리저리 쫓겨다니던 신문지. 강을 건너고 난 뒤까지도 그 신문지가 잊혀지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며 손을 뻗었지만 끝내 아무 것도 붙잡을 수 없었던 가벼운 존재. 내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냉정하고 강한 척하지만 당신은 소심하고 비겁하고, 그리고 감상적이야. 이젠 나도 안 속아. 현석의 말이 맞다. 나는 비어 있는 내 마음속을 다정함으로 채우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늘 아무것도 필요없는 척한다. 사실은 가벼운 신문지면서 마치 강퍅한 철골처럼 구는 것이다. 오해를 받을 만도 하다. 나도 안다. 내가 냉소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이유는 저신문지처럼 결국에는 찢겨버릴 것이 두렵기 때문이란 것을. 차에서 내리며 나는 가볍게 고개를 흔든다. 다정함을 원한다고? 언제까지나 다정한 관계라는 것은 없다. 사라지고 변할 것들에 마음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래서 나는 바람 부는 늦가을 밤이 싫다. <글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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