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실점을 한 전지희(33)는 애써 미소 지었다. 14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라켓을 쥔 채 네트 건너편으로 넘어간 전지희는 방금 전까지 대결하던 ‘삐약이’ 신유빈(21)과 깊게 포옹을 나눴다. 올림픽 동메달을 함께 일궈낸 영혼의 파트너와 어깨동무를 한 채 머리 위 하트를 그려 보이며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신유빈(오른쪽)과 고별경기 뒤 함께 하트를 그려보이는 하는 전지희. 사진 출처 월드테이블테니스 페이스북
중국 출신 국가대표 전지희가 라켓을 내려놓는다.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싱가포르 스매시 2025 여자 단식 64강전에서 신유빈에게 0-3으로 패하며 고별전을 치렀다. 지난해 이미 은퇴선언을 한 전지희는 초청 선수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하며 팬들 앞에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경기 뒤에는 WTT 사무국이 마련한 은퇴 행사도 열렸다.
더구나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를 단짝 신유빈과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신유빈이 태극마크를 단 2019년부터 줄곧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두 선수는 그동안 한국 여자 탁구의 쌍두마차 역할을 해왔다. 특히 왼손을 쓰는 전지희와 오른손을 쓰는 신유빈은 여자 복식에서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궈냈다. 한국 탁구가 아시안게임에서 21년 만에 따낸 금메달이었다. 이어 두 선수는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도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합작했다. 한국 여자탁구 16년 만의 올림픽 메달이다.
신유빈과 고별경기를 하는 전지희. 사진 출처 월드테이블테니스 페이스북고별전 뒤 전지희는 “유빈이와의 경기는 짜릿했다. 마지막 경기를 유빈이와 치러 특별했다”고 소감을 남겼다. 은퇴행사에서 전지희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신유빈도 “언니는 내게 최고의 파트너였다. 앞으로 이런 행운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며 “언니와 함께하며 탁구에 대해 많이 배웠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이곳저곳 데리고 가며 나를 키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인 전지희는 2007년 중국 청소년 대표로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준우승하기도 했으나 결국 중국 국가대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듬해 한국 땅을 밟았다. 2011년 귀화한 전지희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부터 10년 넘게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동메달,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비롯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개, 동메달 5개 등을 목에 걸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부터 2021년 도쿄, 2024년 파리까지 3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기도 했다. 귀화 선수 출신으로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남기며 후배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남겼다.
신유빈과 고별경기를 하는 전지희. 사진 출처 월드테이블테니스 페이스북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도쿄올림픽 뒤 은퇴를 고민했던 전지희는 못다 이룬 올림픽 메달의 꿈을 위해 다시 라켓을 쥐었다. 그 결과 최근 2년 사이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올림픽 동메달을 연이어 성과를 낸 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전지희의 마지막 소속팀인 미래에셋증권의 김택수 총감독(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은 “더 이상 국가대표의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기 어렵단 생각에 은퇴를 결심했다. 그동안 전지희가 거둔 성과는 다른 귀화 선수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전지희는 우선 중국으로 돌아가 제2의 인생을 구상할 계획이다. 대한탁구협회도 14일 열리는 시상식을 통해 전지희의 은퇴를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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