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 이정후 “아버지 이름 지우고 내 야구인생 걷겠다”

  • 뉴시스
  • 입력 2022년 11월 17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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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타로 군림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야구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에게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이정후에게는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처음에 야구하는 것을 말렸던 아버지는 아들이 야구 선수로 성장해나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정후는 주변의 기대로 인한 부담을 이겨내고 이정후는 프로야구 최고의 별로 우뚝 섰다.

이정후는 1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쏠 KBO 시상식에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수상자로 호명됐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 각 지역 언론사 소속 취재 기자들의 투표에서 이정후는 유효 투표수 107표 가운데 104표를 휩쓸었다.

이정후가 MVP를 수상하면서 KBO리그 역사에는 이색적인 기록이 하나 더 추가됐다.

바로 KBO리그 최초 부자(父子) MVP 탄생이다.

이정후의 아버지인 이종범 LG 코치는 프로 데뷔 2년차이던 1994년 타율(0.393), 안타(196개), 득점(113점), 도루(84개), 출루율(0.452)에서 1위를 차지해 사실상 5관왕을 차지했고, 그해 MVP까지 품에 안았다.

이정후도, 이종범 코치도 모두 만 24세의 나이에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에 등극했다.

MVP를 수상한 후 이정후는 “항상 제가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왔는데 오늘을 계기로 나의 야구 인생은 내 이름으로 잘 살아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취재진과 만나서도 이정후는 “아버지를 뛰어넘으려고 야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빨리 이름을 지우고 싶기는 했다. MVP를 타거나 해외 진출을 하면 아버지의 이름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이제 아버지 이름을 내려놓고 나의 이름으로 야구 인생을 걸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MVP 수상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종범의 아들’로 불리는 것이 그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대스타 출신이지만, 이종범 코치는 아들이 야구를 하는데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프로 데뷔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처럼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이정후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아버지가 조언 같은 것을 하고 싶으셨을텐데 일절 하시지 않고 참아주셨다”고 전한 이정후는 “초중고 시절에 배워야 할 것이 따로 있다. 아버지가 그때 참기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참아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기술적인 부분이 나올 수 있었다”며 “프로에 와서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말해주시겠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정후는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 도움을 많이 주셨다. 친구 같이 힘들 때 항상 옆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신다”고 감사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정후가 처음에 야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이종범 코치가 말렸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야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못하면 쫓아낼 것이라고 했다”고 떠올린 이정후는 “안목이 조금 안 좋으셨던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선수 생활을 해보니 아버지가 왜 말렸는지 알 것 같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비참해질 것이 아버지 눈에 보였을 것이다. 야구를 잘하는 것이 쉽지 않고, 아버지는 워낙 잘하셨기 때문에 비교당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라고 마음을 헤아렸다.

똑같이 만 24세에 MVP를 수상한 것에 대해서는 이정후도 “정말 신기하다. 신기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고 놀라워했다.

이날 시상식장에 LG의 마무리 훈련을 지휘하고 있는 이종범 코치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 정연희씨와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의 아내가 될 여동생이 참석해 이정후를 축하해줬다.

이정후는 “어머니가 아버지에 이어 나까지 거의 30년째 뒷바라지를 해주고 계신다. 어머니가 더 주목을 받아야한다고 생각을 한다”면서 “MVP를 받으면서 엄마한테 작은 효도를 하나 한 것 같아 기쁘다. 사실 어릴적 아버지와 있는 시간이 적었고, 어머니랑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엄마한테 더 많이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단 3표가 모자라 만장일치 수상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정후는 “전혀 아깝지 않다. 괜찮다”면서 “사실 예상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며 웃어보였다.

2017년 이 자리에서 신인왕을 수상했던 이정후는 2006년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쥔 류현진(현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2년 신인왕, 2014년 MVP를 받은 서건창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신인왕과 MVP를 모두 수상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정후는 이번 MVP 수상으로 지난해 MVP 투표에서 2위에 그친 아쉬움도 털어냈다.

이정후는 “그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였고, 신이 나서 상을 받으러 왔다. 그해 양현종(KIA 타이거즈) 선배가 MVP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MVP 트로피를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막연하게 생각만 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MVP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도 떠올린 이정후는 “조금만 더 잘하면 진짜 MVP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내년 시즌을 부상없이 마치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해외 진출에 도전할 수 있다. 그는 “현재 단장님과 운영팀장님이 한국에 안 계신다. 한국에 돌아오시면 면담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MVP 상금으로 1000만원을 받은 이정후는 “전부터 부모님과 상의했는데 상금은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자립 청소년을 지원하는 단체에 기부를 할 계획”이라며 “제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전까지 도와주신 분들이 많다. 야구를 하면서 되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고 설명했다.

야구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정후는 안주하지 않는다.

이정후는 “프로 무대는 안주하는 순간 끝이다. 프로 무대에서 6년을 뛰었지만 아직도 내년에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 MVP를 수상한 이 기분도 오늘로 끝내야 한다. 올해 잘한다고 해서 내년에도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기쁨은 뒤로 하고, 내년 시즌에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내년에도 MVP를 노려보겠다”고 다짐했다.

‘내년에도 MVP를 받으면 한 차례 수상한 아버지를 뛰어넘는 것 아니냐’는 말에 이정후는 “아버지는 내가 더 잘한다고 말씀해주시지만 평가는 내가 은퇴하고 나서 받겠다”고 답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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