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당구 인생 조재호, 대회 11번·결승 3번 끝에 첫 정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8일 13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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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우승이 없냐?”

1999년 처음 큐를 잡은 조재호(42·NH농협카드)가 지난해 프로당구(PBA) 무대에 데뷔한 뒤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기도 했다. PBA 정규대회 10번 동안 2번 결승에 올라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여보기도 했지만 프로 우승 경력이 없어 자신의 실력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11번째 대회, 세 차례 결승 끝에 조재호가 개인 첫 PBA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조재호는 27일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열린 PBA 2022~2023시즌 개막전 경주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7전 4승제)에서 다비드 사파타(30·스페인·블루원리조트)를 4-1(15-9, 9-15, 15-9, 15-7, 15-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1월 1일 NH농협카드 챔피언십 128강에서 데뷔 첫 경기를 치른 지 542일 만이다.

경기 전 “컨디션이 좋다”는 그의 말대로 경기는 압도적인 조재호의 우세였다. 세트스코어 1-1로 맞선 3세트가 승부처였다. 선공을 잡은 조재호는 9-9 동점 상황에서 9이닝에 뱅크샷 두 번을 포함해 6점을 내리 따내며 앞서갔다. 이어 4, 5세트 승부를 단 3이닝 만에 결정낸 조재호의 이날 에버리지는 2.379로 사파타(1.519)보다 크게 앞섰다. 자신이 임한 전체 29이닝에서 매 이닝 평균 2점 이상씩을 낸 셈이다. 조재호는 우승 상금 1억 원, 랭킹 포인트 10만 점을 획득했다.

조재호는 “정말 우승이 하고 싶었다. 준우승 두 번도 잘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 생각은 달라보였다”며 “우승을 못했을 때도 ‘잘했다’는 위로를 건네주며 당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가 고마웠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재호는 우승 비결로 체력을 꼽았다. 그는 “체력이 좋아진 덕분에 결승에서 끝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 우승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재호는 자신의 첫 결승 무대였던 휴온스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에 그친 뒤 “4강전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해보면 하루 두 경기(준결승과 결승)를 하는 게 힘들다는 것 자체가 대회 준비 부족이었다. 오늘 대회가 끝났지만 체력이 남아있는 걸 보니 운동의 중요성을 더 느낀다”고 설명했다.

대진운도 따랐다. PBA 최초로 4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정규대회 최다인 26연승을 달리고 있던 프레드릭 쿠드롱(54·벨기에·웰컴저축은행)이 4강에서 사파타에 풀세트 끝에 3-4 역전패를 당했다. 사파타는 “오늘 결승에서 진 가장 큰 이유는 뒷심 부족”이라며 “쿠드롱과의 준결승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경기였다. 2시간 휴식 뒤 결승을 치르게 돼 힘들었다”고 했다. 조재호도 “쿠드롱이 (결승에) 올라왔으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첫 우승을 차지했지만 조재호는 들뜨지 않았다. 그는 “나는 이번 대회 4강에서 유일한 한국 선수였다. 최근 외국 선수가 자주 우승하는 상황은 바람직하다. 실력에서 쿠드롱은 우리(한국 선수)보다 우위에 있다”며 “외국 선수를 만나서 지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고 장점을 빼앗아 내 기량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한국 당구가 더 발전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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