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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이게 진짜 쇼트트랙[베이징 돋보기]

입력 2022-02-11 03:00업데이트 2022-02-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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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겨울올림픽]
심판 개입 거의 없던 깔끔한 경기
황대헌 금 못 땄어도 박수쳤을 것
베이징=김배중 기자
개최국 편파 판정 논란으로 얼룩진 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가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본 가장 찝찝한 경기였다면, 9일 열린 남자 1500m는 지금까지 본 가장 깔끔한 경기였다.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으로 고배를 마신 황대헌(23·강원도청)은 마치 1500m에서는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 팔 움직임을 자제했다. 추월 때도 아웃코스를 활용한 그는 아예 레이스 중반부터는 선두로 치고나간 뒤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렸다. 이 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황대헌은 이날 “깔끔한 경기 중에 가장 깔끔한 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숨겨왔던 전략을 설명했다.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공분을 산 심판진도 이날은 경기에 대체로 개입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레이스를 못 마친 선수들을 결선으로 끌어올리는 관대함도 보였다. 이로 인해 보통 같으면 6명이 올랐을 결선에 10명이나 진출해 출발선에 선수들이 2열 횡대로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심판이 중국선수를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1000m에서 수많은 불미스러운 레이스를 펼치고 한 번도 1위로 못 들어왔지만 다른 선수들의 실격을 틈타 금메달까지 목에 건 중국 런쯔웨이(25)의 나쁜 손은 이날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준결선에서 박장혁과 2위 자리를 다투다 마치 반칙을 당했다는 듯 양손을 들어올린 손동작을 한 런쯔웨이는 비디오판독 결과 다른 지점에서 경쟁자를 손으로 민 사실이 걸려 실격당했다. 경기장 전광판에 슬로모션으로 재생된 ‘증거화면’ 앞에 자국 선수를 응원하러 온 중국 관중들도 야유 대신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심판이 제 역할을 하니 경기를 치를 때마다 씁쓸함만 남던 쇼트트랙이 제법 볼만해졌다. 선수들도 레이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결선이 끝난 뒤 “금메달 딴 선수를 바짝 뒤따라갔더니 좋은 성적으로 완주했다”는 은메달리스트의 소감도 눈길을 끌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올림픽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서가 아니다. 비록 황대헌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더라도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가 ‘심판 개입’ 없이 포효할 수 있는 깔끔한 경기였다면 흔쾌히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쟁을 벌일 때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런 현장의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 선수가 있었을 뿐이다.

베이징=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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