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에 핸드볼 열풍 일으킨 박미라 “상대 슛이 얼굴에 맞아도 기분 좋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14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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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현재 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2위(9승 3패 승점 18)를 달리고 있는 삼척시청의 수비라인을 두고 ‘통곡의 벽’이라 부른다. 정지해(34·센터백), 이진영(27), 한미슬(26·이상 레프트백)이 지키는 수비라인이 든든하기 때문. 실점 부분에서 삼척시청은 278점으로 1위 부산시설공단(279)에 앞선다. 팀 공격력은 8팀 중 6위(307점)지만 이기는 경기가 월등히 많은 이유다.

통곡의 벽 끝자락에 2011년 핸드볼리그 출범 후 9년째 팀의 주전 골키퍼를 맡고 있는 박미라(32)가 서있다. 상대 팀이 힘겹게 수비벽을 뚫고 슛을 던지지만 박미라가 뻗는 팔다리에 막히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벌써 1800번 이상을 막았다. 여자부 2위 오영란(47·인천시청)의 1200세이브, 남자부 통산 1위 이창우(36·SK)의 1100세이브를 크게 앞서는 수치다. 박미라는 “부상 없이 매년 풀타임을 뛰다 보니 기록이 자연스레 따라왔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그의 플레이를 보면 타고난 골키퍼다. 2018 독일 월드컵 당시 조현우(28·대구)의 선방쇼를 연상하듯 “골이다” 생각된 공도 골문 밖으로 툭툭 쳐낸다. “순발력은 자신 있다”는 그는 “훈련 때 유럽 골키퍼들의 훈련 영상을 따라하며 감각을 유지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성격도 ‘막는 일’에 한몫 한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21년 동안 골키퍼 외길만 걸은 그는 상대의 슛이 얼굴에 세게 맞아도 기분이 좋단다. 그저 ‘막아서’다. 대개 다른 골키퍼들이 인상을 찡그려 팀 사기가 잠시 떨어지기 일쑤지만 씩 웃는 박미라 덕에 삼척시청은 팀 분위기도 살아난다. 박미라는 “(이계청) 감독님은 오히려 한번 맞아야 ‘정신 번쩍 들어 더 잘 한다’고 좋아 하더라”며 웃었다.

연고지인 강원 삼척의 핸드볼 열기도 그가 막는 재미에 푹 빠진 이유 중 하나다. 핸드볼이 유일한 볼거리인 이곳서 핸드볼 열기는 야구, 축구 못지않다. 경기 때마다 600석 규모의 관중석이 꽉 차다 못해 계단, 복도에서도 관중들이 서서 응원할 정도다. 선수들이 삼척 시내를 다닐 때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한단다.

“기록 욕심은 없는데 관중들 덕에 은퇴는 삼척에서 하고 싶단 욕심은 있어요(웃음). 이 열기가 전국 곳곳으로 번지면 좋겠습니다(웃음).”

최근 정지해, 이진영, 한미슬 ‘수비 3인방’이 줄줄이 부상당해 삼척시청의 수비라인은 상당히 헐거워졌다. 박미라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상황. 하지만 매 시즌 200세이브 이상을 꾸준히 해온 ‘선방왕’은 의외로 느긋하다.

“막내 (박)소연(19)이가 이 악물고 뛰면서 언니들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고 있어요. 제가 좀 더 힘내서 도와주면 팀이 더 단단해질 기회라 봐요. 6년 전 우승의 기쁨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싶습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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