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투수에게 ‘선발로 던지고 싶은가? 아니면 구원 투수가 좋은가?’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선발’을 말한다. 오승환(콜로라도 로키스)은 해외 진출 전 “더 많은 학생 투수들이 선발이 아닌 구원투수의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두산 베어스 함덕주(23)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해 선발투수로 변신해 9승 2패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하며 새로운 좌완 선발로 큰 가능성을 보였다. 9승 중 선발승은 7승이었다.
그러나 올 초 스프링캠프에서 함덕주는 “어떤 보직이 좋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없다. 솔직히 구원투수도 굉장히 흥미롭다”고 말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우완 강속구 투수 이용찬과 함덕주를 놓고 한 명은 선발, 다른 한 명은 불펜에 배치하기로 정하고 캠프기간 동안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이용찬은 선발 때 더 좋은 구위를 보여주고 있다. 함덕주는 어떤 역할도 가능하다. 국가대표를 생각한다면 불펜에서 더 경쟁력이 있다”며 고민을 끝냈다.
결과는 대 성공이다. 함덕주는 아시안게임(AG) 브레이크 전 51경기에서 5승2패3홀드25세이브 평균자책점 2.30으로 맹활약했다. 한화 이글스 정우람(31세이브)에 이은 세이브 2위 성적이다. 자카르타-팔렘방AG에서도 소금 같은 역할을 해내며 금메달에 큰 공헌을 했다. 3-0 승리로 끝난 AG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마무리 역할을 맡은 이도 함덕주였다.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를 상징하는 30세이브는 이미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팀이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어 세이브 기회에 따라 데뷔 첫 세이브왕 타이틀도 노릴 수 있게 됐다. 함덕주는 항상 “불펜 최고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등판하고 있을 뿐이다”며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악마의 체인지업’으로 불리고 있는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 떨어지는 브레이킹 볼이 위력을 떨치며 특급 마무리 투수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