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성 “멘붕 또 멘붕…2개월 시련 겪고나니 몸이 적응하더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1월 3일 05시 45분


G리그 이리 베이호크스에 입단한 이대성(오른쪽)이 2일(한국시간) 구단 체육관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동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이대성
G리그 이리 베이호크스에 입단한 이대성(오른쪽)이 2일(한국시간) 구단 체육관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동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 이대성
■ 4일 미국프로농구 G리그 개막전 앞둔 이 대 성

처음 미국생활 땐 좌절과 허탈감 연속
8월 초청캠프 활약 후 9월엔 차츰 적응
이리서 드래프트 1R 지명 땐 정말 감격

4일 G리그 개막…이제부터 진짜 도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린다면
NBA 진출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한국 농구는 그동안 ‘도전’에 인색했다. 야구, 축구는 해외무대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자주 나오는 반면, 농구는 늘 KBL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키와 피지컬의 한계라는 생각의 유리벽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도전을 막아버렸다. 그래서 한국 농구는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모처럼 도전 소식이 전해졌다. 이대성(27·이리 베이호크스)이 미국프로농구(NBA) 하부리그 G리그에 진출했다. 4일(한국시간) G리그 정규리그 개막전을 앞둔 이대성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G리그 드래프트 지명(1라운드 20순위) 직후 기분이 어땠나?

“에이전트로부터 지명 소식을 듣고 2∼3시간은 붕 뜬 느낌이었다. 3∼4개 팀에서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2라운드에 뽑힐 줄 알았다. 생각보다 빠른 순번에 뽑혀 놀랐다. 취업비자 때문에 2∼3일간 트레이닝캠프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날 뽑아준 팀에 고마운 마음이다. 지난주 캐나다 오타와에 머물면서 비자문제를 해결했다.”

-드래프트 이전까지 3∼4개월가량 준비를 해왔는데 어떤 점이 어려웠나?

“심리적인 부분이 힘들었다. 일주일에 6일간 매일 90분씩 훈련을 했다. 픽업게임도 일주일에 2∼3차례 했는데, 강한 상대를 만나다보니 허탈감이 컸다. 미국에서 첫 두 달은 게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거 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에 좌절감이 몰려오기도 했고… 9월부터는 이 상황과 상대에 차츰 적응이 됐다.”

-적응이 된 뒤에는 좀 낫던가?

“8월 시카고에서 G리그 초청캠프가 있었는데, 거기서 활약이 괜찮았다. 사실 당시에는 경기력 적응이 덜 된 상태였는데 운 좋게 좋은 플레이가 나왔다. 9월에는 조금씩 적응이 되니까 그 때의 경기력이 꾸준히 나왔다. 그래서 ‘아, 이제는 할 수 있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안드레 베넷이라는 NBA경력 선수와 3달 동안 매치업을 많이 했다. 2달 동안은 그 친구에게 영혼까지 털렸다. 9월에는 내가 조금씩 앞서가고 있었다. 내 리듬이나 템포도 찾았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진짜 무섭고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대성. 사진 | G리그 페이스북
이대성. 사진 | G리그 페이스북

-NBA와 관련된 일을 하는 한국인들의 도움도 컸다고 들었다.

“NBA 본사에 유진, 데니스라는 한국인이 2명 있다. 두 형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G리그 초청캠프도 유진 형이 알려줘서 나간 것이다. 원래는 특정 구단 워크아웃에만 참가할 생각이었는데 유진 형이 초청캠프는 전 구단 관계자가 다 참석하는 것이라 노출이 될 좋은 기회라고 알려줬다. 그 덕에 일이 잘 풀려서 드래프트에서 선발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KBL에서도 최고가 아닌 선수가 무슨 미국이냐’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당연하다. KBL에서 최고가 아니라서 잃을 것도 없지 않나. 내가 꿈꿔왔던 무대니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고 싶었다. 당장 기술향상을 생각하기 이전에 그 기술을 담을 그릇을 넓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제대로 몸을 만들어왔고 기본기에 충실히 했다. 그 덕분에 이곳에서 배우는 것을 남들보다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다들 보이는 것만 믿는 것 아닌가. 이런 준비를 해온 것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도전에 힘을 실어준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지금 PGA에서 일하고 있는 (이)승호 형이 지지를 해줬다. 고교시절 국내에서 열린 NBA캠프 때 인연을 맺었는데, 내 꿈을 늘 응원해줬다. 이번에도 ‘도전은 해봤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힘을 줬다. 미국에서 에이전트를 찾고 훈련을 한 것 모두 승호 형이 연결해줬다.”

-한국 농구선수들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원한다. 본인의 도전이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길 바라는가?

“솔직히 내 도전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길 바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싶어서 하는 도전이 아니다. 미국프로무대에서 농구를 하는 것은 모든 농구선수들의 꿈이지 않나. 내가 간절히 원해서 하는 것이다. 농구에 미친 듯이 빠져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그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다만 내가 G리그에 도전하면서 중·고교 선수들이 미국 진출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미국은 방성윤(은퇴), 하승진(KCC) 같이 당시대 최고의 선수들이나 도전할 수 있는 무대로 비춰졌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대성은 평범한 선수일텐데, 미국에 도전한다고 하니 ‘스타가 아니어도 도전 할 수 있구나’라는 시선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NBA콜업을 기대해도 될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직 난 팀의 주전선수가 아니다. 팀에 NBA 계약을 맺은 조쉬 마겟이라는 가드가 있는데, 그가 콜업이 되어야 내가 주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3개월 전까지만 해도 G리그 팀에 들어올 것이라는 그림도 못 그렸던 선수다. 단 3개월 만에 상황이 너무 변했다. 실제로 드래프트에서 선발됐고 지금은 개막전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3개월 후에 어떤 일이 벌어져있을지 모른다. 기적은 도전하는 자에게만 일어나는 것 아닌가. 올 시즌이 아니어도 매년 도전하다보면 조금씩 꿈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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