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섬기는 리더십’ 신화 일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KIA, 두산에 4승1패 한국시리즈 11번째 우승

2017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KIA 선수단이 일제히 모자를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KIA는 30일 잠실구장에서 이범호의 만루홈런과 구원 등판한 양현종의 위력적인 투구를 앞세워 두산을 7-6으로 이겼다. 1패 후 4연승한 KIA는 8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2017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KIA 선수단이 일제히 모자를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KIA는 30일 잠실구장에서 이범호의 만루홈런과 구원 등판한 양현종의 위력적인 투구를 앞세워 두산을 7-6으로 이겼다. 1패 후 4연승한 KIA는 8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상남자인 그가 그라운드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리고 울었다.

KIA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벌어진 25일. KIA의 김기태 감독은 경기 직전 타격 연습을 하던 타자들의 타구를 살폈다. 유난히 이범호가 높게 띄운 홈런성 타구의 궤적을 꽤 오래 바라봤다.

사실 10월 25일은 김 감독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2005년 10월 25일은 김 감독이 15년 동안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공식 은퇴한 날이다. 1991년 쌍방울에 입단해 국내 최고 왼손 타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현역 마무리는 썩 개운치 않았다. 마지막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는 무릎 부상으로 중도 귀국했고, 시즌 중반에는 허리 부상까지 찾아와 2군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다 거의 등 떠밀리다시피 선수 생활을 접었다. 고향 팀인 KIA의 전신 해태에서 뛰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쌍방울(1991∼1998년), 삼성(1999∼2001년), SK(2002∼2005년)에서 뛰면서 우승 트로피도 한번 들어보지 못했다. 그 상태로 그라운드를 떠난다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됐다던 그였다. 체면 떨어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그는 어렵게 은퇴 결정을 내렸던 당시 “새로운 길을 갈 때라 생각하고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유니폼을 벗으며 지도자로 새 길을 찾아 현역 때의 미련을 지우겠다는 의지를 품었다.

그리고 12년 후. 자신의 은퇴 날짜였던 25일부터 시작된 한국시리즈에서 김 감독은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를 풀었다. 감독으로 생애 첫 우승을 맛봤다. KIA는 30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을 7-6으로 제압하고 4승 1패로 통산 11번째 정상에 올랐다. KIA는 2009년 이후 8년 만에 우승 축배를 들었다. 김 감독은 김응용, 조범현 전 감독에 이어 역대 3번째로 KIA 우승 감독이 됐다.

선수들의 체면을 살려주는 김 감독의 리더십과 절묘한 수읽기가 마지막 경기까지 빛났다. 2015년 KIA 감독 첫해 그라운드에 누워서까지 심판에 항의하는 등 선수들의 기를 살리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렸던 김 감독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묵묵히 선수들에게 신뢰를 보냈다. 설사 컨디션이 나쁘더라도 팀 기여도가 높았던 선수들은 무작정 교체하거나 빼지 않았다. 4차전까지 12타수 1안타로 극심한 타격 침체에 빠진 이범호를 타순 변화, 선발 제외 없이 믿고 내보냈다.

KBO리그 역대 정규시즌 최다 만루 홈런 기록(16개)을 갖고 있는 ‘만루의 사나이’ 이범호는 5차전 3회초 2사 만루에서 두산 선발 니퍼트의 초구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그랜드슬램으로 자신을 믿어준 김 감독에게 제대로 보답했다. 김주찬 역시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주찬이 말고 2번 타자를 맡길 선수가 없다”는 말로 기를 살렸다. 김주찬은 5차전에서 정확한 희생 번트 두 개로 득점에 디딤돌을 놨다.

팀의 에이스 양현종에게는 이번 시즌 확실하게 국내 최고의 좌완 투수 대접을 해줬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경기를 완전히 맡겨 완봉승을 이끌어냈다. 5차전에는 9회말 마지막 투수로 투입해 마운드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할 수 있도록 해줬다. 에이스의 체면을 제대로 세워줌과 동시에 두산 좌타자들의 힘을 뺀 ‘신의 한 수’였다.

김 감독은 시상식에서도 선수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더 받을 수 있도록 시상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러고는 선수들에게 일일이 배꼽 인사를 했다. 자신을 가리고 다시 한 번 선수들을 배려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야구#한국시리즈#김기태#기아 타이거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