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리더·열정·전술 3無의 신태용호, 태극마크 자격 있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0월 12일 05시 30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도 탈락한 것 이상으로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축구대표팀. 유럽 원정 2연전에서 리더 열정 전술이 없는 3무(無) 축구를 보여준 대표팀 사령탑 신태용 감독의 시름도 깊어만 간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도 탈락한 것 이상으로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축구대표팀. 유럽 원정 2연전에서 리더 열정 전술이 없는 3무(無) 축구를 보여준 대표팀 사령탑 신태용 감독의 시름도 깊어만 간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모로코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10월10일· 스위스)을 본 한 축구인은 “촌놈 축구, 동네 축구를 본 듯하다”고 정리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한국축구의 수준은 형편없었다. 명색이 국가대표 선수들인데, 경기시작 10분이 지나도록 제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 2골이나 먹었다.

사실상 2군인 모로코 선수들의 개인기에 농락당하고, 빠른 패스와 역습에 속수무책이었다. 처음에 상대를 얕보다가 몇 대 얻어맞으니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꼴이었다. 결국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더 많은 골을 내주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앞서 열린 러시아전(10월7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4로 졌다. 먼저 4골을 먹고 2골을 따라붙었다.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다. 한국은 이번 2차례 원정 평가전에서 2패(3득점 7실점)를 기록했다.

신태용 감독은 유럽으로 떠나면서 결과와 내용,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욕심이었다. 내용만이라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는 더 많은 걸 원했다. 선수구성을 보면 그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8월 조기소집의 명분으로 국내파를 제외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처음으로 해외파만 불렀다. 대표팀 소집은 항상 신중해야한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국가 정도라면 원칙대로 가는 게 맞다. 조금 급하다고 K리그 일정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조기소집을 했기 때문에 일이 꼬였다. 원칙이 한번 어긋나다보니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국내파를 부르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수비에서 경쟁력이 높은 국내파들이 빠지면서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결과야 그렇다고 치자. 평가전은 내용이 더 중요하다. 본선을 앞두고 다양한 선수를 테스트해보고, 또 감독이 구상한 전술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다.

그렇다면 이번 평가전의 소득은 무엇이었을까. 실패에서 배웠다면 할말 없지만, 거둔 수확은 없다. 제대로 테스트해본 선수는 없고, 감독의 전술은 무용지물이었다. 특정 포지션에 선수가 부족해 임시방편으로 자리를 메운 선수들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양 부자연스러웠다.

결국 감독의 구상과 선수들의 플레이는 따로 놀았다. 조직력은 급격히 무너졌다. 선수들이 우왕좌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구심점이 필요하다. 누군가 중심을 잡아줘야 혼란을 최소화 하고 빨리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2002년의 홍명보와 2010년의 박지성이 했던 그 역할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둥은 없었다. 한번 흔들린 팀은 원심력처럼 더 크게 흔들렸다. 베테랑 중에는 후배들을 독려하며 나름대로 노력했을 것이다. 경험 있는 선수들은 국제경기일수록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단합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팀 분위기는 선수들이 스스로 만들어야한다.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소집되는 2~3일 동안 코칭스태프가 할 수 있는 역할엔 한계가 있다. 선수들끼리 신뢰하고 똘똘 뭉쳐야 비로소 조직력은 살아난다. 자기 잘난 맛에 축구를 하면 안 된다. 축구는 팀플레이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선수들의 열정이나 전투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악착같은 맛이 없다고 한다. 태극마크의 책임감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물론 이 모든 게 선수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현재 축구협회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았다면 달라야한다. 그래야 태극마크를 달 자격이 있다.

이번 평가전 결과는 감독의 책임이 가장 크다. 변형 스리백을 들고 나왔지만 선수들이 못 따라갔다. 아니 정확히 이해했는지가 궁금하다. 수비 구멍이 크게 난 이유다. 신 감독은 모로코의 빠른 측면공격에 뻥뻥 뚫리자 전반 중반에 선수교체를 통해 실험을 접고 포백으로 전환했다.

수비 조직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호흡을 맞춰야만 제대로 된 수비전술이 나온다.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찾는 과정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섣부른 실험은 오히려 역효과만 부를 뿐이다. 신 감독이 “(모로코전에서) 초반에 그렇게 실점할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선수들의 경기력이 너무 떨어진 모습에 나도 놀랐다”고 했듯이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박지성은 지난 8월 최종예선 이란전을 앞두고 후배들을 격려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현 상황에서 선수들이 갖는 부담감은 상당히 클 것이다. 대표선수가 된다는 것은 그런 부담감을 이기고 자기가 가진 것을 보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부담감을 잘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경기장에서 보여줬으면 한다.” 태극마크를 단 모든 이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무게감을 깊이 느껴봤으면 한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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