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가슴 속 열정 불태운 18일의 여정…잊지 못할 한여름 밤의 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9월 8일 05시 45분


축구대표팀의 베테랑 이동국이 9월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인천공항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축구대표팀의 베테랑 이동국이 9월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인천공항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34개월 만에 태극마크 다시 달고
무엇과도 못 바꿀 20분간의 출전
“가장 뜨겁고, 고통스러웠던 여정
무조건 나가야했고, 목표 이뤘다
좋은 꿈을 꾸고 긴 잠에서 깬 기분”


“긴 꿈을 꾸고 일어난 것 같다.”

정확히 18일이었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을 대표하는 최고의 베테랑은 8월 21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시작해 9월 7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마무리 된 짧고도 길었던 여정을 ‘한여름 밤의 꿈’으로 정의했다. 고대 중국과 서역을 이어준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는 한국과 러시아를 연결한 꽃길이었다. 한국축구는 9월 6일(한국시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끝난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최종전(10차전)에서 0-0으로 비겼지만 이란-시리아전이 무승부로 끝난 덕분에 조 2위로 본선진출을 확정했다.

통산 10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오른 이 자리에 2년 10개월여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단 스트라이커 이동국(38·전북현대)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9차전(0-0)에서도,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도 골 망을 흔들지 못했다.

이동국은 이란전에서 후반 44분 교체 투입돼 추가시간 포함해 5분 가량,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후반 33분 그라운드를 밟고 16분을 뛰었다.

2주간의 준비기간과 20분을 살짝 넘긴 출전시간.

축구대표팀 이동국. 스포츠동아DB
축구대표팀 이동국. 스포츠동아DB

그러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20분이었다. 매 순간이 소중했고 특별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축구화를 벗는 순간까지 국가대표는 계속될 목표”라던 그는 7월 부임한 신태용(47)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표팀에 다시 갔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파주NFC에서 이동국의 일거수일투족은 대표팀을 둘러싼 최고 관심거리 중 하나였다.

정열을 쏟았고 혼신을 다했다. 신 감독은 “실력과 컨디션만 보고 뽑았다”고 했지만 코칭스태프의 숨겨진 기대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차두리(37) 코치보다 많은 나이의 큰형, 때론 삼촌의 입장에서 후배들을 독려하며 이끌었다. 당연히 힘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최선참으로서 한국의 월드컵 명맥이 끊어진 자리에 선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혹자는 “월드컵에서 탈락해봐야 한국축구가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어느 순간 월드컵 진출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 한다”고 말했다.

절대 다수의 축구인들은 그 말을 반대한다.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순간, 우린 마지막으로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1982년으로 되돌아간다. 러시아로 향하지 못했다면 36년 만의 한국축구 치욕의 순간이 된다. 역사는 발전으로 이어져야지, 퇴보해선 몹시 곤란하다.

이동국은 “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 월드컵을 우리 국민들이 꾸준히 볼 권리가 있다. 어떻게 탈락을 생각하겠나. 무조건 나가야 했고, 다행히 원하는 목표를 이뤘다”고 말했다.

축구대표팀 이동국.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축구대표팀 이동국.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애써 평온하려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눈은 충혈 돼 있었고, 입술은 부르텄다.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친 뒤 신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함께 고생한 태극전사들과 조촐한 축하파티를 했다. 맥주와 탄산음료 한 잔이 전부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동국은 동석한 대표팀 스태프와 김남일(40) 코치에게 “너무 힘들었다. 상당히 긴 현역 생활을 했는데, 이번처럼 가장 뜨겁고 고통스런 대표팀 훈련캠프는 처음”이라며 넋두리를 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던 터라 피로감도 굉장했다. ‘나잇값 못 한다’는 평가가 싫어서 더 이를 악물었다. ‘분위기 못 맞춘다’는 뒷말을 피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선배가 돼야 했다. 홀로 돋보여서는 안 될 대표팀에서 그가 할 일은 너무 많았다.

그래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다. 이동국은“긴 잠을 자고 깨어난 기분이다. 괜찮은 꿈을 꾸긴 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떠오른다. 현실로 다시 돌아온 이동국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월드컵 본선은 아직 생각하지 않겠다. 9개월 뒤는 내게 너무 먼 미래다. 가슴의 열정을 새삼 끌어올린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인천국제공항|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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