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 준비 없이 무모하게 수비라인 끌어올렸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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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호가 우물 밖 세상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2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끝난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1-6으로 완패했다. 대표팀이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에서 6실점을 한 것은 1996년 12월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 2-6으로 패한 이후 20년 만이다. 스페인전 대량 실점으로 슈틸리케호 앞에 훈장처럼 따라붙던 ‘국제축구연맹(FIFA) 최소 실점 팀’ ‘9경기 연속 무실점’ 등의 수식어도 더이상 쓰기가 민망하게 됐다. 대표팀은 2015년 치른 A매치 20경기에서 4골(경기당 0.2골)만 내줘 FIFA 가입 209개국 중 최소 실점 팀에 이름을 올렸다. 스페인을 만나기 전까지 대표팀은 9경기(쿠웨이트전 3-0 몰수 승 제외) 연속 무실점을 기록 중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우리는 스파링 상대가 아니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겠다”며 강한 전진 압박을 통한 공격적인 축구를 예고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을 평소보다 상대 진영 쪽으로 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유럽팀으로는 처음 맞붙은 스페인(FIFA 랭킹 6위)은 그동안 대표팀(50위)이 주로 상대했던 아시아 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가는 스페인의 패스 축구를 감당하기에 대표팀의 압박은 역부족이었다.

특히 볼 소유 능력에서 당대 최고로 꼽히는 ‘팬텀 드리블러’ 안드레스 이니에스타(FC 바르셀로나)는 물고기 떼를 먹이로 유인하는 것처럼 한국의 압박 그물을 요리조리 끌고 다니다 빈틈이 드러난 수비 라인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팬텀 드리블러’는 수비 사이를 유령처럼 헤집고 빠져나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수비 뒤 공간을 노린 다비드 실바(맨체스터시티)의 칼날 같은 패스에도 대표팀은 속수무책이었다. 슈틸리케호는 스페인의 정교한 패스 축구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모하게 수비 라인을 끌어올렸다가 대량 실점의 빌미만 제공했다.

스페인에 6골을 내준 나라는 드물다. 최근 5년간 스페인이 한 경기에서 6득점 이상을 기록한 상대는 2011년 9월 6-0으로 이긴 리히텐슈타인과 2013년 6월 10-0의 승리를 거둔 타히티다. 두 팀 모두 FIFA 랭킹 150위권 밖의 약체다. 한국은 스페인을 상대로 전진 압박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포백 수비라인도 커버 플레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등 호흡이 맞지 않았다. 대표팀에서 그동안 왼쪽 풀백을 맡아온 박주호(도르트문트)와 김진수(호펜하임)는 소속 팀에서의 부진으로, 오른쪽 풀백 김창수(전북)는 부상으로 이번 소집 명단에서 빠졌다.

공격력도 무뎠다.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황의조(성남)는 제대로 된 슈팅 한 번 날리지 못했다. 손흥민(토트넘)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후반 16분 이재성(전북)과 교체됐다. 손흥민은 교체 후 벤치로 들어서면서 수건을 집어던지며 경기 내용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패스 마스터’로 불리는 기성용(스완지시티)의 패스 실수도 잦았다. 후반 16분 교체 투입된 주세종(서울)의 골로 영패를 면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점수 차 이상의 격차가 있었다.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체코와의 경기에서) 정신적으로 다시 딛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5일 체코 프라하에서 체코와 친선경기를 갖는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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