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프로농구 챔피언 등극]“나는 주류다” 비주류의 반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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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무관 恨 풀은 추일승 감독

《 오리온이 29일 고양체육관에서 벌어진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 4선승제) 6차전에서 KCC를 120-86으로 대파하고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오리온은 전반에만 65점을 쏟아부으며 일찌감치 KCC의 전의를 꺾었다. 오리온은 2001∼2002시즌 우승 이후 14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추일승 감독의 변화무쌍한 전략과 탄탄한 국내 선수층, 현란한 개인기와 팀플레이를 겸비한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와 조 잭슨의 압도적인 경기력이 어우러진 완벽한 우승이었다. 》

“우승하면 원 없이 울고 싶었다. 비주류, 우승 경험이 없는 감독이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농구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고, 열심히 준비해 왔기 때문에 나는 주류라고 생각한다.”

2003년 코리아텐더 감독으로 프로농구 사령탑의 길을 걸은 지 13년 만에 무관의 한을 푼 추일승 감독의 격한 소감이었다.

홍대부고-홍익대 출신으로 농구계에서는 비주류로 분류되는 추 감독은 현역 시절은 물론이고 지도자로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실업팀 기아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지만 팀 동료였던 허재 전 KCC 감독, 김유택 전 중앙대 감독, 유재학 모비스 감독 등 스타 선수들에 가려 보조 역할만 하다 유니폼을 벗었다. 프로농구 감독이 돼서도 정규리그 통산 285승(309패)을 거뒀지만 팀을 우승권으로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추 감독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농구 철학을 다져왔다. 1999년 맡게 된 상무 감독 자리는 그의 지도자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상무에 입대한 정상급 선수들을 데리고 승패에 대한 부담 없이 다양한 작전과 전술을 시도해 봤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의 그를 만든 큰 자산이 됐다.

추 감독의 농구는 흔히 집념의 농구로 불린다. 그는 시즌 중 영상을 통해 상대팀에 대한 전력을 분석하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날이 적지 않다. 외국인 선수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해외 농구 이론서를 직접 번역해 읽고, 외국인 선수들과 직접 얘기를 나눴다. 오리온 관계자는 “감독님이 전술을 기록한 용지를 보면 마치 의사가 영문으로 쓴 환자 진료 기록 시트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들의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선수들을 폭넓게 활용하는 쪽으로 전술을 재정비했다. 지난 시즌 초반 8연승을 질주하다 트로이 길렌워터 등 외국인 선수들이 개인 기록에 욕심을 부리면서 팀의 공수 균형이 깨졌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슈터 문태종을 영입하면서 김동욱과 이승현, 장재석 등 장신 포워드들을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시켰다. 만능 외국인 선수인 헤인즈를 영입해 득점력을 더욱 강화했다. 가드 조 잭슨을 선발한 것도 신의 한 수가 됐다. 시즌 중반 헤인즈가 다리와 발목 부상으로 장기간 팀을 비워 위기가 찾아왔지만 대체 선수로 기용한 제스퍼 존슨이 훌륭하게 공백을 메웠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추 감독은 KCC의 안드레 에밋과 하승진에게 가는 패스 길을 차단하면서 수비 전환 속도가 느린 KCC의 약점을 속공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추 감독의 노력은 결국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프로 통산 308번째 승리에서 우승의 결실을 맺었다.

고양=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오리온#프로농구#챔피언#추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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