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태웅의 특별한 ‘선수 은퇴식’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7일 05시 45분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왼쪽)이 ‘깜짝 선물’을 받았다.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우리카드와의 정규리그 최종전 직후 구단에서 전격적으로 마련해준 ‘선수 은퇴식’에서 기념액자를 선물 받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승리로 역대 최다연승 신기록인 18연승을 달성했다. 천안|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왼쪽)이 ‘깜짝 선물’을 받았다.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우리카드와의 정규리그 최종전 직후 구단에서 전격적으로 마련해준 ‘선수 은퇴식’에서 기념액자를 선물 받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승리로 역대 최다연승 신기록인 18연승을 달성했다. 천안|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역대 최다 18연승’ 현대캐피탈 최 감독을 위한 깜짝 이벤트

최 감독, 현역시절 경기영상 뜨자 눈시울
꽃다발 손에 쥔 부모님 등장에 눈물 펑펑
팬들의 환호 속 양복 벗고 마지막 토스도


6일 현대캐피탈의 18연승 대기록이 달성되는 순간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축제 분위기였다. ‘프로배구 최초 18연승 달성’을 기념하는 대형 통천이 내걸린 가운데, 현대캐피탈 선수단은 정태영 구단주를 헹가래쳤다. 최태웅(40) 감독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연승 소감을 밝히는 한편 신현석 단장 등 음지에서 고생한 프런트를 일일이 소개했다. 주장 문성민과 구단주의 감사인사가 있어졌다. 구단은 관중을 위해 250개의 사인볼을 나눠주며 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잠시 후 경기장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감독 최태웅의 ‘선수 은퇴식’이 시작됐다. 대형 전광판으로 최 감독의 선수시절 플레이 장면이 방영됐다. 이를 지켜보는 최 감독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선수에서 사령탑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은퇴식을 할 기회가 없었던 최 감독을 위한 잔치였다. 이제 정말 선수에서 은퇴한 그는 “현대캐피탈에 와서 선수로서 우승을 하지 못해 미안했는데, 오늘 뒤에 있는 선수들이 우승을 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구단주는 등번호 6번의 유니폼이 담긴 액자를 최 감독에게 선물했다. 서포터즈 자일즈의 선물 증정에 이어 가족이 등장했다. 최 감독은 아버지(최만호 씨)가 전하는 꽃다발을 받는 순간, 감정이 북받치는 듯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비디오(카메라)를 사서 내 플레이를 찍어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부모님의 열성적 지원은 모든 배구인들이 안다. 그런데 내가 배구에만 신경을 쓰느라 가족에게 소홀했다. 나는 불효자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관중이 “최태웅”을 연호하는 가운데, 핸드 프린팅 행사가 이어졌다.

최 감독은 팬들을 위해 양복을 벗고 마지막으로 세트를 했다. 송병일 코치가 네트 건너편에서 올려준 볼을 여오현 플레잉코치가 리시브로 연결했고, 최 감독의 정확한 세트를 문성민이 코트에 꽂아 넣었다. 이어 윤봉우 플레잉코치가 속공을 성공시켰고, 오레올이 마지막으로 스파이크를 성공시키며 최 감독의 현역 은퇴식을 마무리했다. 최 감독은 “잘해보려고 했는데 정신없이 공을 올렸다”고 선수로서의 마지막 세트를 떠올렸다. V리그 최초로 통산 1만세트를 돌파하고, 통산 1만2571세트를 기록하는 한편 세터 최초로 2008∼2009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최우수선수)까지 차지했던 명세터는 현역 마지막 세트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팀의 테마곡 ‘같은 심장으로’가 코트에 흐르는 가운데, 그는 코트를 돌며 감사인사를 했고 팬들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앞날을 축복해줬다.

행복한 시즌 마무리에 어울리는, 모든 선수가 꿈꾸는 이날의 화려한 은퇴식은 뒷얘기도 남겼다. 이날 은퇴식의 주인공은 최 감독이었지만, 원래 구상대로라면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당초 은퇴식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최 감독이었다.

‘뒤늦은 은퇴식, 감사의 눈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우리카드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깜짝 이벤트로 진행된 ‘선수 은퇴식’에서 부모님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안|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뒤늦은 은퇴식, 감사의 눈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우리카드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깜짝 이벤트로 진행된 ‘선수 은퇴식’에서 부모님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안|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최태웅 감독의 ‘선수 은퇴식’은 플랜B


최 감독은 시즌 도중 구단에 한 가지 건의를 했다. “역대로 현대캐피탈을 거쳐 간 수많은 선수가 있는데,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은퇴식을 하고 떠난 적도, 구단이 마련해준 기억도 없다. 이번에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고 요청했다. 2월 25일 7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던 OK저축은행전 때 2세트에 플레잉코치 윤봉우를 투입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당시 최 감독은 “현대캐피탈의 전통과 레전드의 프라이드를 살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8연승을 달성한 6일 우리카드전 3세트에도 윤 코치를 투입해 2005∼2006시즌 15연승을 일궈냈던 레전드가 새로운 연승기록을 쓰도록 배려했다.

최 감독의 이 같은 생각에 동의한 구단은 팀을 떠난 베테랑들 가운데 적당한 후보를 찾았다. 비록 지금은 다른 팀에 있지만, 그동안 현대캐피탈을 위해 수고한 노력에 감사하며 현대캐피탈 선수로서의 은퇴식을 기획했다. 선물과 함께 수천만원대의 큰 돈도 성의로 준비했다. 팀을 떠난 베테랑 선수에게는 기대 하지 않은 퇴직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상대 구단에서 난색을 표했다. 현재 자기 구단 소속인 사람이 과거 소속팀에 가서 현역 은퇴식을 한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현대캐피탈은 그 뜻을 존중했다. 그래서 원래의 은퇴식 계획은 무산됐다. 구단은 그 베테랑의 현역 은퇴식 때 최 감독의 선수 은퇴식을 깜짝 이벤트로 끼워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플랜A는 사라지고 플랜B만 남게 됐고, 최 감독의 깜짝 은퇴식이 펼쳐졌다.

천안 l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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