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현대건설 선수는 타짜? 보너스는 마지막 경기서 짜릿하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2월 1일 05시 45분


라운드별 평균 범실 개수에 따라 500만원의 보너스를 받는 현대건설 선수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11월 25일 IBK기업은행전 5세트에서 무범실로 3-2 승리와 함께 보너스를 또 챙겼다. 스포츠동아DB
라운드별 평균 범실 개수에 따라 500만원의 보너스를 받는 현대건설 선수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11월 25일 IBK기업은행전 5세트에서 무범실로 3-2 승리와 함께 보너스를 또 챙겼다. 스포츠동아DB
프런트와 평균범실 약속 지켜 500만원 받아
삼성화재 선수 ‘그로저 놀아주기’ 의기투합
VIP영접 구태 여전…프런트부터 달라져야


벌써 3라운드다. 11월 28일 3라운드 첫 경기에서 의미 있는 승리가 나왔다. 10연패의 수렁에 빠져있던 KB손해보험이 대한항공을 3-0으로 누르고 마침내 시즌 2승째를 따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컸을 강성형 감독을 비롯한 KB손해보험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에는 중요한 승리였다. 코트 뒤에서 더 애를 태우던 프런트도 한숨을 돌렸을 것이다.

배구는 준비과정에 빈틈이 생기면 시즌 도중에는 쉽게 공백이 메워지지 않는다. 대책 없이 연패를 지켜볼 뿐 패배를 막을 방법은 없다. 그래서 프런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른 팀의 성공을 베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 팀의 성공사례 속에 숨어있는 정신을 이해해야 제대로 된 프런트다.

V리그의 문제는 이사회 구성원들의 머리 속에 있는 아마추어적 사고다. 달콤한 의전에 더 신경 쓰고, 내 임기 동안 무언가를 해서 성과를 인정받겠다는 그런 생각만 버린다면 V리그는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 이사회의 생각이 달라져야 V리그가 발전한다.

● 프로 12년째지만 여전히 아마추어적 모습 보여주는 V리그

올 시즌부터 흥국생명은 경기가 끝난 뒤 단장이 선수단과 악수하는 의식을 없앴다. 현대캐피탈도 신현석 단장 부임 이후 선수들이 도열해 VIP와 악수하는 행사를 생략했다. 신 단장은 “선수들이 경기를 하느라 지쳐있을 텐데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 필요하면 내가 가서 하겠다”며 경기 후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에게 다가가 따로 격려는 하지만, 모두를 일으켜 세워서 악수를 하진 않는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서로 잘 아는 처지에 무슨 악수냐”며 경기 후 악수를 생략했다. 각 구단의 실무자들이 V리그에서 가장 없어져야 할 구태의연한 요식행사로 손꼽는 것이 경기 후 선수단과의 악수다. 격려는 평소에 하면 된다. 굳이 경기장에서 힘든 경기를 끝낸 선수를, 그것도 져서 속상한 선수들과 악수해봐야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높은 사람들의 자기만족이다.

실무자들은 본부석의 존재도 언급한다.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그런 면에서 가장 프로다운 발상을 보여주는데, 나머지 경기장은 대부분이 경기를 보기 가장 좋은 위치에 본부석을 두고 그 자리에 VIP들을 앉게 한다. 이는 아마추어적 문화다. 명색이 프로라면 관중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오는 관중에게 최고의 자리를 줘야 하고, 모든 관중은 입장료만큼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관중보다는 VIP에 목을 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구단 직원들의 일도 의전이 최우선이다. 경기 전 VIP 영접, 경기 후 선수단 회식장소 물색과 그 자리에 VIP 누가 가고 좌석배치는 어떻게 하느냐 같은 경기력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일에 프런트가 정신을 팔아야 한다. 프로배구단의 프런트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한다. 이사회가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V리그는 말로만 프로페셔널이고 행동은 여전히 실업배구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기어코 500만원 따낸 ‘타짜’ 현대건설 선수들

시즌을 앞두고 현대건설 프런트와 선수단이 약속을 했다. 라운드를 기준으로 세트 평균 범실이 4.5개 밑으로 떨어지면 보너스 500만원을 주기로 했다. 1라운드 현대건설 선수들은 23세트에서 총 90개(세트 평균 3.91개)의 범실을 기록해 500만을 땄다. 그 돈은 지금 주장의 통장에 있는데, 어디에 쓸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2라운드 흥국생명과의 첫 경기에서 현대건설 선수들은 무려 27개의 범실을 기록해 보너스를 받기가 힘들어보였다. 다행히 이후 3경기에서 경기당 20개 미만을 기록해 세트 평균 4.5개에 근접했다. 11월 25일 IBK기업은행전에서 현대건설 선수들은 4세트까지 무려 17개의 범실을 기록해 기준치를 넘어갈 위기였는데, 5세트에 무범실을 기록하며 500만원을 또 따냈다. 구단 관계자는 “우리 선수들 정말 타짜다. 다음 시즌부터는 보너스를 더 올려주더라도 조건은 더 까다롭게 해야겠다”며 기뻐했다. 현대건설은 올 시즌 범실 부문 2위에 오르며 메리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삼성화재 선수들이 11월 29일 OK저축은행과의 3라운드 홈경기에서 승리해 6연승에 성공한 뒤 외국인선수 그로저를 중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그로저를 위해 요즘 삼성화재 선수들은 밤마다 그의 집을 찾아가 말벗이 돼주고 있다. 팀워크는 이런 것에서 싹튼다. 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 선수들이 11월 29일 OK저축은행과의 3라운드 홈경기에서 승리해 6연승에 성공한 뒤 외국인선수 그로저를 중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그로저를 위해 요즘 삼성화재 선수들은 밤마다 그의 집을 찾아가 말벗이 돼주고 있다. 팀워크는 이런 것에서 싹튼다. 스포츠동아DB

팀에 승리 안겨주는 그로저와 매일 밤 놀아주는 삼성화재 베테랑들

6연승을 기록한 삼성화재 베테랑들은 요즘 바쁜 훈련일정 속에서도 새로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팀의 복덩이인 그로저와 매일 밤 놀아주는 일이다. 그로저는 최근 신치용 단장과의 면담에서 “훈련이 힘들기는 한데 견딜 만하다. 다만 밤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다. 러시아리그 때보다는 낫지만, 아직 가족이 오지 않아 외로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면담 이후 신 단장은 선수들에게 “요즘 그로저가 심심하단다”는 한마디를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선수들은 훈련 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로저의 집을 찾아가 같이 놀아주면서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삼성화재는 역대로 다른 팀들보다 외국인선수의 활약이 뛰어난데, 비싸고 좋은 선수를 뽑아서가 아니다. 외국인선수들이 스스로 팀을 위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노하우 덕분이다. 이런 작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디테일이 선수를 감동시킨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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