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마다하지 않은 ‘아름다운 패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1월 2일 05시 45분


삼성선수들. 스포츠동아DB
삼성선수들. 스포츠동아DB
삼성, 덕아웃에 도열해 두산 우승 축하

5년 연속 통합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최강자의 품격을 엿볼 수 있었다.

삼성에게 잔인한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삼성은 31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KS) 5차전에서 2-13으로 져 1승4패로 우승을 내줬다. 사상 첫 위업에 도전했지만 상승세를 탄 두산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4년 동안 지켜왔던 정상의 자리를 내주면서도 삼성은 멋진 스포츠맨십을 발휘하며 아름답게 퇴장했다.

일찌감치 점수차가 벌어지면서 삼성의 5연패 꿈은 멀어졌다. 패배를 몰랐기에 그 아픔은 더욱 크게 와 닿았다. 두산 마무리 이현승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포수 양의지와 부둥켜 앉던 순간, 삼성 선수들은 하나 둘 짐을 싸서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패자의 뒷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삼성의 뒷모습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시상식과 세리머니가 진행되는 동안 3루측 덕아웃에 도열해 두산의 우승을 축하해줬다. 이승엽은 감회에 젖은 듯,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취임 이후 줄곧 우승만 해오던 삼성 류중일 감독은 ‘들러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류 감독은 2011년 아시아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결승전 상대였던 일본 소프트뱅크 선수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축하해주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나도 언젠가 저런 순간이 오면 똑같이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날 삼성을 꺾고 우승한 두산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진정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이었다.

삼성의 배려는 KS 내내 이어졌다. 1·2차전이 열린 대구 홈경기 때는 전광판으로 우승 장면을 내보내면서도 두산을 꺾고 우승한 2013년 KS 영상은 일부러 뺐다. 두산 관계자는 “우리 선수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로 보여서 고마웠다”고 털어놓았다. 비록 준우승으로 밀려났지만, 최강팀의 품격에 부족함이 없었던 장면들이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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