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도 없고 축구화 신고 뛰지만…“야구가 좋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4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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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만들어진 담장으로 둘러싸인 야구장에는 뛸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지만 학생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경기 고양시의 킨텍스 IC 부근에 있는 이 야구장에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도착해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었다. 서정고 김민규 군(17)은 “평소에는 연습을 거의 못해요. 주말에 학교 운동장에서 가끔 하는데 창문을 안 깨려면 조심해야 해요”라며 웃었다.

지난달 31일 고양시 킨텍스야구장에서는 서정고와 백석고의 고양시 청소년부 스포츠클럽 야구리그가 열렸다. 국민생활체육회(국체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진국형 클럽리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출범시킨 스포츠클럽 시군구 야구리그다. 전국적으로 성인부 8개, 청소년부와 유소년부 각 4개의 리그가 운영되고 있다. 리그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만 한다. 각 리그에 속한 5개 팀은 나머지 팀들과 2번씩 경기를 벌여 최종 순위를 가린다. 각 리그의 1위 팀들은 11월 야구리그 최강전에 출전한다.

서정고 주장 남민우 군(17)은 고양시에서 고등부 리그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참가신청을 했다. “5팀밖에 참가를 못 한다고 해서 서둘렀지요. 우리끼리는 야구할 공간도 심판도 없어서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 야구하기가 힘들거든요. 토너먼트 대회는 한번 지면 바로 떨어지지만 리그전은 경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야구가 좋아 모인 학생들이라 학교차원의 지원은 없다. 웃 옷은 통일해야 하는 대회 규정에 따라 서정고 학생들은 등번호가 달린 5000원짜리 파란 조끼를 급하게 맞춰 입었다. 바지는 학교 체육복을 입었고, 신발은 대부분 축구화를 신었다. 머리 보호용 헬멧은 상대팀인 백석고에서 빌려서 사용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백석고의 마무리투수 우성래 (17)군은 2이닝 동안 삼진만 5개를 잡아내며 6-4승리를 지켜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날 기록을 맡은 김경수 고양 야구리그 운영이사(44)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이 정도 수준으로 던지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백석고 4번 타자로 나서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한 빈성훈 군(17)은 “태어나서 처음 슬라이딩을 해봤다”며 활짝 웃었다.

학생들에게 이날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광판이 고장 나 스코어가 표시되지 않았지만 누구도 점수를 묻지 않았다. 마운드에 올라 마음껏 공을 던지고 좌우 95m, 가운데 담장 115m 크기의 야구장에서 힘껏 공을 때릴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경기를 지켜본 학부형 두인수 씨(47)는 “아들이 야구연습을 하느라 PC방도 안 간다. 이게 다 공부 아니겠냐”며 미소를 지었다.

고양=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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