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새로운 문화 받아들여야 성공 주위 조언 받아들이는 자세도 롱런 비결 한국음식의 적응 여부는 성패에 큰 영향 두산 타이론 우즈, 외국인선수의 롤모델
두산 잭 루츠가 4일 웨이버 공시를 통해 올 시즌 외국인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중도 퇴출됐다. 두산은 “잔여시즌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외국인선수 스카우트 전문가 A는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들락날락하는 선수가 한국에 올 때는 풀시즌 개런티를 해준다. 무명선수가 아니면 옵션 계약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에이전트를 통해 잔여연봉의 일부를 줄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오래 거래해오면서 신뢰가 쌓였다면 상부상조가 가능하다. 애프터서비스는 에이전트의 능력 중 하나다. 그래야 다음 거래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은 과감한 결정을 했다. 대체 용병을 정하지 않은 채 ‘손톱 밑의 가시’를 먼저 뽑아냈다. 지금은 마이너리그 시즌도 한창이다. 원하는 선수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설사 낙점한 선수가 오겠다고 해도, 소속팀에서 많은 이적료를 요구할 것이다. A는 “평소라면 5만달러 정도겠지만, 지금은 상대 구단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도 기다렸다는 듯 6일 나이저 모건의 퇴출을 발표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준 품행과 태도로 본다면 애시당초 김성근 감독과 모건의 화학적 결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스프링캠프부터 계속 불협화음이 들렸다. 김 감독은 “품행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기량이 모자라서”라고 말했지만, 베테랑 감독이 달을 가리킬 때, 때로는 달이 아니라 손가락을 봐야 할 경우도 있다. 요즘 우리 야구는 너무 현상에만 몰두하고, 그 이면을 잘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 외국인선수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KBO리그를 찾은 외국인선수들의 목표는 하나다. 돈과 명예다. 오래 야구하면서 그 다음 빅마켓으로의 진출을 원한다. 1998년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롤 모델은 두산 타이론 우즈다. KBO리그에서 기량을 과시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최고 연봉을 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은 플로리다에서 비싼 집을 여러 채 사서 호사스럽게 산다고 한다. 요즘은 KBO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복귀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외국인선수들은 자기 팀 스카우트의 움직임에 특히 예민하다. 모 구단 관계자는 “스카우트가 미국에 출장을 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외국인선수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선수들에게 스카우트의 미국행은 좋지 않는 뉴스다. 신생팀 kt의 스카우트팀은 외국인선수 기량이 함량미달이라는 평가에 따라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kt 외국인선수들은 달라졌다. 앤디 마르테가 맹타를 터뜨리다 부상이 재발한 것도, 필 어윈이 초반 부진을 씻고 7일 호투하며 시즌 첫 승을 신고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용병에게도, 국내선수들에게도 가장 두려운 것은 자기 자리를 누가 대신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의 퇴출은 다시 힘겨운 시절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 실력에 성격까지 좋은 외국인선수는 없다!
만일 감독과 구단에게 성격과 기량 가운데 외국인선수에게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 기량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두 가지를 다 갖춘 선수를 원하겠지만, 이는 kt가 남은 시즌 5할 승률을 달성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아무리 착해도 야구를 못하면 필요 없다’고 믿는 대부분의 감독들은 기량을 먼저 본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기량만 좋다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내가 안 보면 된다. 야구를 잘하면 모든 것이 다 예쁘게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외국인선수를 퇴출시킬 때 판단의 첫 번째 이유는 기량이 아니라 품행이다. 두산의 결정도 그래서 빨랐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선수가 잘하고 못할 수도 있는데, 성격이 어두웠다. 못하면 변명이 많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 이런 선수는 데리고 있어봐야 답이 없다고 보고 조기에 결정을 내렸다”고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적응’은 중요한 단어다.
같은 야구지만 외국인선수가 자국리그에서 했던 야구와 KBO리그에서 하는 야구는 다르다. 경기와 훈련 스타일, 덕아웃 및 라커룸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생활 등이 모든 것이 다르다. 롯데에서 뛰었던 라이언 사도스키는 “한국에서 나는 베이스볼(baseball)이 아니라 야구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지닌 선수들은 성공한다. 새로운 문화로 용감하게 뛰어들고 받아들이는 선수는 성공한다. 반면 실패한 선수들은 이질적 문화에 견디지 못하고 튕겨나간다.
물론 한국이란 나라가 외국인선수들에게 호락호락하진 않다. 어느 외국인선수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일상으로 여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경우도 많다. 그는 ‘한국에서 했던 경험 가운데 가장 이상한 것’을 묻자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이상한 방송”이라고 답했다. 통역이 알아보니 아파트 관리실의 민방위훈련 예고방송이었다. 실제로 훈련경보가 내려진 날 그 선수와 가족은 전쟁이 난 줄 알고 벌벌 떨었다고 한다. 그래서 적응이 중요하고, 옆에서 이들을 진심으로 도와줘야 한다. 팀이 원하는 것은 과정이야 어떻든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 그라운드가 아니라 라커룸에서의 행동을 보라!
실패한 외국인선수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입이다. 입이 짧아 잘 먹지 못한다. 초창기 롯데에서 데려왔던 어느 선수는 한국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근처 미군부대에서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피자만 먹었다. 제대로 먹지 않는데 야구를 잘할 리가 없었다. 공·수·주 3박자를 두루 갖췄다던 그 선수는 삐쩍 말라서 일찍 미국으로 돌아갔다.
KBO리그에서 롱런하고 성공한 선수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보인다. 적극적으로 동료를 친구로 만들었다. 가끔은 자기 주머니도 열면서 마음을 샀다. 한국의 ‘현미경 야구’에 단점이 노출되면 재빨리 수정하려고 노력했다. 주위의 조언을 잘 받아들였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고 항상 노력했다.
그렇게 보자면 우즈는 참 대단했다. 은행원 출신의 아내 셰릴의 공도 컸다. 한국생활이 익숙해지자 사는 곳의 주민 반상회에 참석할 정도로 뛰어난 친화력을 발휘했다. 셰릴은 아파트 주민들과 자주 잠실구장에 나왔다. 한국야구 첫해 한국투수의 변화구에 한 뼘 이상 스윙 궤적이 어긋났던 우즈는 김인식 감독이 기다려주는 사이 한국의 스트라이크존을 파악했고, 결국 숨겨진 기량을 터트렸다. 그를 진짜 두산의 선수로 만들어준 것은 LG와의 벤치클리어링 때였다. 가장 먼저 뛰어나와 강력한 태클로 상대 선수를 눕혔다. 이후 우즈는 진정한 동료가 됐다. 외국인선수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여부는 그라운드가 아니라 라커룸에서 어떻게 지내고,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