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홀, 퍼터가 필요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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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LPGA 롯데챔피언십 우승

역전을 부른다는 빨간 바지가 이번에는 기적을 일으켰다. 김세영(22·미래에셋·사진)은 공동 선두였던 18번홀(파4)에서 거센 뒤바람에 티샷을 해저드에 빠뜨려 1벌타를 받은 뒤 세 번째 샷을 그린 앞 프린지(가장자리)에 떨어뜨렸다. 반면 같은 조로 동타였던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OK 거리’도 안 되는 짧은 파 퍼트를 남겼다. 패색이 짙었지만 김세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라도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철학을 지닌 김세영은 5.5m 거리에서 칩인 파를 잡았다.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간 그는 18번홀에서 아이언 티샷 후 154야드를 남기고 8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했다. 두 차례 지면을 튕긴 공은 깃대를 맞고 그대로 컵 안으로 사라졌다. 갤러리의 환호를 통해 뒤늦게 이글 사실을 확인한 김세영은 그린에 오르기도 전에 박인비의 축하를 받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19일 미국 하와이 주 카폴레이의 코올리나GC(파72)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 김세영은 1타를 잃어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를 기록한 뒤 연장전 끝에 승리했다. 이로써 그는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가장 먼저 2승째를 거두며 상금 랭킹 선두(69만9735달러)에 나섰다.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 부문에서도 1위. 시상식에서 서울 송파구에 건설 중인 123층 높이의 제2롯데월드를 본뜬 트로피를 받은 김세영의 기세가 신인왕뿐 아니라 투어 전체를 평정할 듯 높기만 하다. 2승 모두 연장승.

○ 진화하는 태권 소녀

태권도 사범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태권도 공인 3단인 김세영은 이번 대회 직전까지 거둔 통산 6승이 모두 역전승이었다. 2013년 롯데마트오픈에서는 마지막 홀 이글로 역전 드라마를 썼고, 그해 한화금융클래식에서는 17번홀 홀인원에 힘입어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마지막 라운드를 선두로 시작해서는 우승한 적이 없다. 지난달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피레이션에서는 3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가 무너졌다. 이날 1타 차 선두로 출발한 김세영은 박인비, 김인경(한화)과 16번홀까지 공동 선두를 이루는 치열한 경합 끝에 생애 처음으로 역전 우승이 아닌 우승을 경험했다. 김세영은 “실패를 통해 일관성을 유지하고 긴장감을 조절하는 능력을 배웠다. 내 골프가 한 단계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 무늬만 미국투어

이날 우연히 TV 중계를 지켜본 국내 시청자라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로 착각할 만했다. 국내 기업이 타이틀 스폰서인 데다 선두권이 온통 한국 선수로만 채워졌기 때문. LPGA투어 관계자는 “마지막 날 한국 선수만으로 챔피언조 3명이 이뤄진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 시즌 한국(계) 선수는 시즌 9개 대회에서 7승을 합작하는 초강세를 유지했다. 2012년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30cm 퍼팅 실패로 우승을 날린 뒤 오랜 슬럼프에 빠졌던 김인경은 3위로 마치며 재기 가능성을 보였다. 김효주(롯데)와 최운정(볼빅)은 공동 4위에 올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김세영#LPGA 롯데챔피언십#우승#박인비#연장전#2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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