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기자의 여기는 오키나와] 최희섭 “18개월 공백이 나를 바꿨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2월 4일 06시 40분


KIA 최희섭이 다시 뛴다. 그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진행 중인 스프링캠프에서 독한 각오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KIA 최희섭이 다시 뛴다. 그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진행 중인 스프링캠프에서 독한 각오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최희섭, 야구장 못가면 매일 10km 걸으며 고민
팬·구단에 고마움…김병현·서재응과 재기 각오

신(神)이 파괴하려는 대상은 대개 가치로 가득한 것들이다. ‘야구의 신’은 KIA 최희섭(36)을 위해 야구를 잘할 수 있는 몸과 열정, 그리고 순수함을 줬다. 그러나 야구를 향한 최희섭의 ‘순수’는 한국사회에서 오해와 편견으로 점철됐다. 야구인생에서 단 한번도 ‘정치적’이지 않았던 최희섭은 올곧이 비난을 감수했다. 단언컨대 최희섭은 돈을 탐내는 선수가 아니다. 조직에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선수도, 예의가 없는 선수도 아니다. 오로지 좋아하는 야구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의 순수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 눌려 잊히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영혼을 담은 야구를 하겠다고 했다. 진정성을 가슴에 품은 ‘빅초이’ 최희섭을 2일 밤 오키나와에서 만났다.

● 배려를 통해 다시 찾은 치열함

-손바닥이 벗겨질 정도로 요즘 열심히 한다면서요?

“훈련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번을 해도) 들어가는 기합 자체가 달라요. (미야자키 마무리캠프부터)3개월을 했는데 확실히 (몸이)달라요. 저는 상체 힘이 좋은 타자예요. 코치님도 그러세요, ‘너의 힘을 다 쓸 필요가 없다. 손목으로만 쳐도 된다’고요.”

-재능으로 야구하는 스타일인가요?

“절대 아니에요. 힘보다는 기술적인 연구를 많이 해요. 단 야구장에서 100%를 다 쏟고, 밖에선 안 해요. (KIA가 3일 훈련 1일 휴식인데) 3일간 다 쏟아내고 하루는 방에서 쉬어요. 감독님은 쉴 때도 몸을 움직이라 하시는데 그럴 힘조차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훈련 스타일을 존중하는 감독을 만나야 효과가 극대화되겠네요?

“감독님이 선수의 몸 상태에 관한 생각을 무시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훈련하도록 배려를 해주니까 더 많이 하게 돼요. 항상 (훈련량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감독님이 배려를 안 해줬다면 이번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2년 만에 봄 캠프에 합류해 훈련하니 기분이 어때요?

“프로는 제가 못하면 누가 평가하기 전에, 연봉 잘리고, 자리 뺏기는 곳이잖아요. 야구하고 싶은데 몸은 안 따라가고 팀에 도움은 안 될것 같고…. 정말 괴로웠어요. 은퇴 생각 많이 했어요. 지금 이렇게 야구할 수 있는 이유는 제 자신보다 가족 때문이지 아닐까 싶어요.”

-다시 야구 하니 행복합니까?

“1999년 시카고 컵스에 입단해 처음 미국 갔을 때 가족들이 다 우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저를 돈 주고 미국에 판 느낌이었대요. 애리조나 공항까지 잠 한숨도 안 자고 갔어요. 제 목표는 메이저리그에서 잘하는 게 아니었어요. 단 한번이라도 메이저리그 올라가는 것이었어요. 4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에 한번도 안 들어갔어요. 모든 것을 다 쏟았어요. 그 덕분에 메이저리그를 밟았죠. 어떻게 4년을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야구인생에서 해볼 것은 다해봤던 것 같아요. 야구인생에서 가장 혼신의 힘을 다 쏟은 시기였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영혼 없이 야구를 했었는데 지금이 가장 치열한 것 같네요.”

● 목표가 아니라 최선을 보여주고 싶을 뿐

-무엇이 마음을 바꿨습니까?

“(공백기였던) 18개월이라는 시간이요. 저는 끝내려고 했어요. 오래 전부터 저는 알고 있었어요. 무너질 것을요. 2009년 우승하고(은퇴를 놓고) 가족들하고 엄청 싸웠어요. 우승 한번 하고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이뤘으니까요. 그 이후에 연봉 같은 것은 관심 없었어요.”

-차라리 KIA로 오지 않고 미국에서 계속 야구를 했으면 행복했을까요?

“빅리그로 못 올라갔으면 계속 있었을 거예요.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8년 채웠잖아요. 그리고 치열하게 경쟁해서 밀렸잖아요? 밑으로 내려갔잖아요? 그러면 끝난 거예요. 도전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공백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나요?

“팬과 구단에 미안한 것을 생각하면 미치겠어요. 작년에 느꼈어요, ‘내가 너무 힘들게 했구나.’ 고맙다는 것을 느꼈어요. 야구선수가 야구장에 못 나가면…. 매일 10km 이상을 걸었어요. 어떻게 야구를 마무리하고, 어떻게 살지….”

-못 뛴 겁니까? 안 뛴 겁니까?

“몸이 아팠어요. 뛸 수가 없었어요. 자존심이 있잖아요. ‘누구 때문에 야구를 안 하고’, 그렇게 배우지 않았어요. 저하고 서재응 선배는 은퇴하려고 했어요. KIA가 아닌 다른 팀에서 뛰는 것은 한 톨의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 절망 속에 김기태 감독이 와서 상황이 반전된 거네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것이 야구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에요. 야구장에 가면 말이 필요 없어요. 행동으로 보여줘야 돼요. ‘잘 치고 못 치는 것을 떠나 최선을 다하는 것.’ 2년 전만 해도 ‘3할 30홈런 100타점 쳐야 되는데’였어요. 원하는 게 그런 거니까 가보기도 전에 무너져요. (몬스터시즌이었던) 2009년도 쓰러져 죽어버린다는 마음으로 했던 거였죠.”

-2015년 최희섭은 어떤 목표로 임합니까?

“목표 없어요. 이제는 팀과 가족을 위해서 많이 내려놓으려고요. 희생까지는 몰라도 배려하고 봉사하고 싶어요. 엄청 힘든데 재미가 있으니 의욕이 나네요.”

● 최희섭-김병현-서재응 챔피언스필드에 서는 날

-올 시즌 KIA를 둘러싸고 비관론이 많습니다.

“이 말은 확실히 할 수 있어요. 져도 그냥 안 져요. KIA에서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에요. 변화가 있으면 이루어집니다. KIA 9년 동안 이렇게 고참들이 나서서 하는 것은 처음 봤어요.”

-의욕을 되찾기까지 고마운 사람들이 많겠네요.

“가족의 힘으로 야구를 하고 있어요. 감사해요, KIA 구단에도 김 감독님한테도. (이)범호 주장이 감독님께 부탁해서 마무리 캠프도 갈 수 있었어요. 체력테스트를 앞두곤 (김)상훈이 형, 재응이 형이‘(은퇴를 해도 좋으니) 이거 합격하고 끝내라’고 말해준 것도 고맙고요.’ 이게 팀이겠죠.”

-김병현, 서재응까지 메이저리그 3인방의 재기를 올해 볼 수 있을까요?

“(김)병현이 형이 고마운 것이요, ‘3명 다 모여서 한번 하고 그만둬 야하지 않겠냐’고 말하더라고요. 작년에 전남 함평에서 재활할 땐데. 그땐 ‘형님, 장난해?’ 했는데….(웃음) (실제 그렇게 되면)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후 처음이 되겠죠.”

-얼굴이 밝아졌어요.

“야구 못하게 되면 나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 무너져요. 야구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잖아요. 내일은 뭘 배울까 설레서 잠이 잘 안와요. 김 감독님이 KIA에 안 오셨으면 은퇴했을 거니까 10년 동안 감독하게 해드려야죠.(웃음)”

오키나와(일본)|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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