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 유발 王’ 로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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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Cup Brasil 2014]
브라질과 3, 4위전 첫골 PK 얻어내… 네덜란드 3-0 완승 결정적 역할
엄청난 스피드… 파울 없인 못막아
적장 스콜라리 “그가 대회 MVP”, 판할 감독 “맨유 데려가고 싶다”

미스터 병원.

병원 신세를 많이 져서 붙여진 별명이다. 너무 쉽게 다친다고 해서 ‘유리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아리언 로번(30)은 출중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 온 스타로 꼽힌다.

로번은 잉글랜드 명문 구단 첼시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2009∼2010시즌부터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다. 그가 한 시즌에 리그 30경기 이상을 뛴 적은 에인트호번(네덜란드)의 유니폼을 입었을 때인 2002∼2003시즌 한 번뿐이다. 자주 병원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 많은 부상을 당해 때로는 슬펐다. 솔직히 은퇴를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다”라고 말했다.

잦은 부상도 서러운데 그를 더욱 서럽게 만든 것은 그의 외모를 보는 시선이다. 노안에다가 대머리인 탓에 보통 사람들은 그를 은퇴 가까운 노장 선수로 잘못 보기도 했다. 브라질 월드컵 도중 그의 외모를 두고 “월드컵 공인구인 브라주카와 로번의 공통점? 털이 없다는 것”이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네덜란드는 13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의 마네 가힌샤 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3, 4위 결정전에서 3-0으로 이겼다. 이날 로번은 네덜란드의 선제골을 이끌어냈다. 전반 3분 로빈 판페르시의 페널티킥 선제골은 그가 브라질의 치아구 시우바에게서 반칙을 얻어 만들었다. 브라질 일간지 오글로부는 로번을 두고 “이번 월드컵에서 그를 막으면 이겼고, 그를 막는 데 실패하면 패했다”고 표현했다.

로번은 조별리그를 비롯해 4강까지 네덜란드 선수 중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날 경기를 포함해 세 경기의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대회 최우수선수인 골든볼 후보 10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은 “이번 대회 최고의 선수는 로번이다”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3골 1도움을 기록한 그는 7경기에서 모두 690분을 소화하며 13일 현재 전체 선수 중 가장 긴 79.3km를 뛰었고 28번의 반칙을 당했다. 빠른 돌파를 하는 그를 막기 위해서 상대 선수들은 자주 반칙을 범해야 했다. 다음 시즌부터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는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할 감독은 이날 경기 전 “로번을 내 팀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인정을 받았다. 그에게 월드컵은 끝이 아니다. 그는 “내 기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과의 4강전에서 1-7 참패를 당한 후 2경기 연속 패하며 4위에 머문 브라질 팬들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화가 난 상파울루의 한 시민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경기가 끝난 뒤 TV를 망치로 부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나자 경기장에서는 관중들의 야유가 나왔다. 브라질 언론들은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할 월드컵이다”라고 전했다. 그래도 브라질 팬들은 ‘축구 영웅’ 네이마르가 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리우데자네이루=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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