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4야망 ‘오뚝이’ 이효희, 베테랑 세터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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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2월 21일 07시 00분


숱한 좌절과 경쟁에 밀려도 오뚝이 같이 일어선 기업은행의 베테랑 세터 이효희가 사상 4번째 우승 반지를 목표로 올 시즌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숱한 좌절과 경쟁에 밀려도 오뚝이 같이 일어선 기업은행의 베테랑 세터 이효희가 사상 4번째 우승 반지를 목표로 올 시즌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2번의 이적…3개팀서 3번의 우승
김사니에 밀려 은퇴…7개월 쉬기도
복귀 후 신생팀 기업은행서 값진 V
후배들 이끌며 4번째 우승반지 야망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의 베테랑 세터 이효희(34)는 3개 팀에서 우승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5시즌 KGC인삼공사 소속으로 첫 V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도로공사 김사니와 세터 대결에서 이겼다. 2008∼2009시즌 흥국생명의 주전세터로 두 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GS칼텍스의 이숙자와 대결했다. 지난 시즌 기업은행에 창단 2년 만에 첫 우승도 안겼다. 역시 상대는 GS였다.

그러나 화려한 우승 뒤에는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2006년 FA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인삼공사를 떠났다. 도로공사에서 뛰던 김사니가 인삼공사로 왔다. 1년 후배 김사니가 밀고 오자 자리가 없던 이효희는 흥국생명을 선택했다. 마침 주전 세터 이영주가 재계약 문제로 팀과 갈등을 빚다 은퇴했다. 한일전산여고 시절 은사였던 황현주 감독은 이효희를 불렀다. 그래서 흥국생명과 인연을 맺었다. 김연경과 함께 우승도 일궜다. 좋았던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3년 뒤 또 김사니가 따라왔다. FA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악연이라면 악연이었다. 팀을 떠나야 했다. 흥국생명은 이효희에게 플레잉코치를 제안했다. 현역으로 뛰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서른한 살 때였다. 이번에는 받아주는 팀이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은퇴선수가 됐다. V리그 여자선수들 가운데 이효희와 같은 사례는 많다. 선수 본인은 더 뛰고 싶지만 나이나 연봉 혹은 줘야 할 자리가 없어 떠도는 선수들이다. 은퇴라기보다는 밀려서 나가는 ‘밀퇴’에 가깝다. 7개월을 놀았다. 고민을 했다. 배구선수로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실업팀에서 제의가 왔다. 가려던 찰나에 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이 연락을 했다.

신생팀 창단감독으로 선수들을 찾고 다니던 이 감독은 이효희의 기량과 성실성을 믿었다. 함께 해보자고 했다. 3번째 우승은 그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신생팀의 베테랑은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감독이 원하는 배구를 위해 먼저 나서야 했다. 한 시즌을 쉬고 다시 유니폼을 입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훈련 도중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너무 힘들어 기업은행 소속으로 한 시즌을 마치고 그만 둘 생각도 했다. 이 감독이 말렸다. “무책임한 선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감독의 말에 마음을 돌렸다. 그 선택이 많은 행운을 가져다 줬다.

훈련장소도 숙소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시작했던 기업은행은 한 시즌을 지나면서 차츰 팀다운 모습을 찾아갔다. 2012∼2013시즌 기대하지 않았던 우승을 했다. 세 번째였다. 우승보너스도 받았다. 기업은행은 이효희가 선수생활을 마치면 정식 직원으로 특채하기로 결정했다. 최초의 사례였다. 정년이 보장되는 은행원이라는 미래의 직장을 확보했다. 20억 원짜리 우승 보너스를 받았다고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다. 직장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현역 은퇴 뒤 정년까지 은행원으로 근무하면 그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쉬면서 평생의 인연이 될 남자도 만났다. 이 감독을 비롯한 주위 사람에게 인사도 시켰다. 디펜딩 챔피언의 자리에서 시작한 이번 시즌 이효희는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정규리그 우승을 눈앞에 둔 이 감독이 일등 공신으로 주저 없이 손꼽는 활약이었다.

상대팀 감독도 모두 인정하는 이효희의 강점은 침착함이었다. “그 전에는 가끔 흥분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지난해 우승을 경험한 뒤로는 그런 모습이 없어졌다”고 인삼공사 이성희 감독은 높게 평가했다. 이효희는 “어린 선수들이 나를 이모 또는 엄마라고 부른다. 내가 먼저 흥분하면 어린 선수들이 흔들리기 때문에 최대한 침착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나이가 주는 지혜였다.

상대 블로커를 따돌리는 점프토스 기술과 분배능력도 6개 구단 세터 가운데 최고다. GS 이선구 감독이 가장 칭찬하는 기량이다. “세터의 모범이다. 가장 좋은 자세에서 온몸을 이용해 토스를 한다. 다른 선수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

세터의 능력을 보여주는 세트부문 순위는 3위다. 세트당 10.333개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숫자 이상으로 공격수를 살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효희는 “경기에 들어가면 두 가지만 생각한다. 상대 블로커의 높이와 위치 우리 공격수의 컨디션을 보고 판단을 내린다. 우리 공격수들이 결정을 잘 내줘 고맙다”고 했다.

박정아와 김희진, 카리나는 이효희가 정성껏 올려주는 공으로 공격 3각 편대를 완성했다.기업은행이 압도적인 성적으로 시즌을 질주한 것도 이효희의 침착성과 판단, 후배들을 이끄는 솔선수범이 원동력이 됐다.

이번 시즌 뒤 FA 재계약도 기다리고 있다. 몇 년 더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4번째 우승반지를 꿈꾸는 이효희는 또 다른 선물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시즌 MVP다. 아직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이효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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