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피플] 강명구 “나는 매일 결승득점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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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0월 25일 07시 00분


삼성 강명구는 투수의 버릇 등을 담은 수첩을 매 경기 갖고 다닌다. 상대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꼼꼼한 메모는 그가 대주자 요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24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둔 강명구가 자신의 수첩을 살펴보다 미소를 짓고 있다. 대구|전영희 기자
삼성 강명구는 투수의 버릇 등을 담은 수첩을 매 경기 갖고 다닌다. 상대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꼼꼼한 메모는 그가 대주자 요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24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둔 강명구가 자신의 수첩을 살펴보다 미소를 짓고 있다. 대구|전영희 기자
■ 삼성 특급대주자 강명구

수첩 안엔 상대팀 투수 버릇이 ‘빼곡’

“주루보단 ‘타자 도우미’ 역할에 주력
어떤 상황에 나서든 늘 득점할 준비”


2004년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4차전. 보스턴 데이브 로버츠는 3-4로 뒤진 9회말 대주자로 1루를 밟았다. 이후 2루를 훔친 그는 후속 타자의 적시타 때 동점 득점에 성공했다. 결국 보스턴은 로버츠의 주루플레이를 시발점으로 내리 4연승을 달렸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다. 팬들은 당시 로버츠의 도루를 ‘더 스틸’이라고 명명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더 스틸’과 같은 전설을 꿈꾸는 선수가 있다. 삼성의 전문 대주자 요원 강명구(33)가 그 주인공이다.

● 질주의 비결은 꼼꼼한 메모

24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KS) 1차전을 앞둔 대구구장. 강명구는 주머니 안의 수첩을 꺼냈다. 수첩 안에는 상대 투수들의 버릇 등을 적은 메모가 빼곡했다. “2005년부터 떠오르는 것들을 끼적이기 시작했어요. 투수들이 버릇을 고치기 때문에 저 역시 꾸준히 업데이트를 합니다.” 경기 막판 등장하는 대주자지만, 그의 주루플레이는 이미 덕아웃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면밀한 관찰을 업으로 삼다보니,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5분만 얘기해보면 상대를 파악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요즘은 상대가 연구를 워낙 많이 하다보니, 대주자 요원이 먹고 살기 더 힘들어졌다. 시력보호제라도 챙겨야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 타자 도우미도 대주자의 역할

삼성은 기동력에서 두산에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중심타선의 무게감에선 앞선다. 강명구는 “사실 대주자가 나가는 순간은 박빙 상황이다. 내가 안 나가는 게 팀으로선 가장 좋다. 타자들이 펑펑 쳐서 이겼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특히 큰 경기에서 대주자의 기회가 오면,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실수가 패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부담감이 크죠. 아웃이라도 되면 3만 관중이 절 노려보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번 KS에서 무리한 주루플레이를 하기보다는 ‘타자 도우미’ 역할에도 신경 쓸 계획이다. 그가 누상에 있다면, 상대 배터리는 직구 위주의 볼 배합을 한다. 타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초구를 좋아하는 타자가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공략하라’고 미리 얘길 해요. 대신 변화구 때만 한 번씩 참아달라고 하죠.” 뛰지 않아도 위협적인 주자, 그것이 강명구의 위력이다.

● 결승 득점을 꿈꾸는 특급 대주자

강명구의 우승반지는 어느덧 4개(2005·2006·2011·2012년). 올 시즌 우승한다면, 다섯 손가락에 모두 반지를 끼운다. 사실 2012년 KS 직전까지 그에게는 가을에 얽힌 아픈 과거가 있었다. 현대와의 2004년 KS 9차전 8회 대주자로 나섰다가 치명적 오버런을 범했고, 결국 삼성은 우승을 내줬다. 그러나 2012년 SK와의 KS 1차전에선 7회 대주자로 나가 절묘한 주루플레이로 득점하며 8년 전의 실수를 만회했다. “거포들이 끝내기홈런을 치는 장면을 상상하듯이 저는 결승 득점을 하는 모습을 그려요. 어떤 상황에서 나가게 될지 항상 이미지트레이닝을 합니다. 주목을 못 받아도 상관없어요. 제 득점으로 승리한다면 그걸로 기쁜 일이죠.” 그는 교체로 들어와 또 다시 교체되는 자신의 숙명을 “쓰고 버리는 카드”로 표현했다. 그러나 바둑에서도 반집 승부에선 사석의 활용으로 승패가 결정되기도 한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우승과 준우승이 갈리는 KS에서 그는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대구|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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