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1군 김상호를 만든건 ‘눈물의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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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7월 26일 07시 00분


‘나락에서 희망을 본다!’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막상 당사자가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쉬울까. 롯데 김상호는 신고선수로 밀려나는 설움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1군 무대에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16일 사직 LG전에 출장한 김상호가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사직|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나락에서 희망을 본다!’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막상 당사자가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쉬울까. 롯데 김상호는 신고선수로 밀려나는 설움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1군 무대에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16일 사직 LG전에 출장한 김상호가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사직|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구단 운영팀 “롯데엔 1군 자원이 많아서…자넨 신고선수로 가줘야겠네”

지난 겨울 신고선수 전환 쇼크 야구 포기할 뻔
권두조 2군감독 “죽도록 해보고 안되면 관둬”
홈런·타점·타율…2군 휩쓸고 정식 1군선수로
타율 0.276…생존 위해 중장거리 타자 변신중


롯데 1루수 김상호(24)는 프로 2년차인데 아직까지 팀의 해외전지훈련에 한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프로 첫 해에는 7라운드 지명 신인이라 도저히 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는 내심 기대로 가득 찼다. 그러나 또 탈락이었다. 경남 김해 상동구장에 남아 동계훈련을 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구단 운영팀에서 호출이 왔다. 스프링캠프 추가 합류자 명단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런데 정작 그에게 구단이 내민 것은 계약서였다. 이미 지난 시즌 후 2500만원에 연봉계약을 했는데 계약서를 다시 쓰라고 한 이유는 신고선수 신분으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신고선수. 한마디로 롯데의 보류선수 65명 밖으로 밀려난다는 의미였다. 연봉이 줄어들거나, 방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는 ‘롯데에서 65등 안에도 못 들어간다’는 냉정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구단이 “1루수 자원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득해도 충격이 컸던지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저, 그만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나왔다.

이틀을 고민했다. 살면서 야구만 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럼에도 마음을 돌린 것은 부모님과 롯데 선배들 덕분이었다. 이틀 뒤 신고선수 계약서에 사인했고, 상동구장 2군에 들어갔다. 권두조 2군 감독은 “5월 31일까지 죽도록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그만두라”고 말했다. 신고선수가 다시 정식선수 신분이 돼 1군 경기에 출장할 자격을 얻는 것은 6월 1일부터였기 때문이다.

권 감독은 김상호를 롯데 2군의 4번타자로 중용해줬다. 홈런, 타점, 타율 등에 걸쳐 퓨처스리그를 휩쓰는 성적이 나왔다. 롯데는 5월 31일 정식선수로 다시 김상호와 계약했고, 6월3일 1군으로 불러올렸다.

25일까지 김상호의 성적은 타율 0.276(29타수 8안타)에 3타점이다. 특히 2루타가 3개나 된다. 대학 때까지 통산 홈런이 1개뿐인 ‘똑딱이 타자’였지만,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해 중장거리 타자로 변신 중이다.

김상호는 은사인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을 위해서도 “롯데에서 꼭 이름을 알리겠다”는 각오다.

장충고 시절, 경기에 패한 뒤 너무 분해 울면서 야구장비를 필드에 내던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러지 말라”며 뒤통수를 쳤다. 돌아보니 흰머리 아저씨였다. “내버려두세요”라고 계속 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당시 고려대 사령탑이었던 양 전 감독이었다. 그때 김상호의 근성을 높이 산 양 전 감독 덕분에 고려대에 입학해 주장까지 맡을 수 있었다. 장충고 야구부 사상 최초의 고려대 입학이었다. 이어 2012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의 7라운드 지명까지 받았다.

김상호는 올해 일부러 0번을 택했다. 어떻게든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다. 1군에서의 모든 순간이 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프로 첫 안타를 삼성 에이스 장원삼에게서 뽑았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김상호가 그 짜릿함을 누릴 기회는 이제 무궁무진할 것이다.

대전|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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