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만나는 ‘1루’… 야수들이 말하는 재미있는 주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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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거포에다 덩치도 커서 사람들이 과묵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반전이 있는 선수다. 말이 무지 많다. 나보다 연봉도 많이 받으면서 ‘술 사달라, 밥 사달라’ 아주 가관이다.” SK의 1루수 박정권이 폭로한 삼성 최형우의 ‘반전 있는’ 모습이다.

두 선수가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1루. 프로야구에서 각 팀의 1루수는 좋든 싫든 출루하는 주자를 맞이해야 한다. 매일같이 치열한 경기가 치러지는 시즌 중에 1루는 다른 팀 선수와 공유해야 하는 만남의 장소다. 프로야구 TV중계 화면을 보면 1루수와 1루 주자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동아일보가 9개 구단 주전 1루수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이스 배팅입니다”다. 안타로 출루한 주자도 그날 1루수의 타격 활약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 1루수 채태인은 “두산 홍성흔 선배는 정말 유쾌하다. 내가 홈런이라도 치는 날이면 1루에 와서 ‘워어어어 우와!’ 하면서 엄지를 치켜든다”고 말했다.

LG 김용의와 KIA 김주형은 1루에서 장난을 가장 많이 치는 선수로 롯데 강민호를 꼽았다. 두 선수가 공통적으로 밝힌 주자 강민호의 특징은 “엉덩이를 만진다”는 것. 롯데의 1루수 박종윤은 강민호와 같은 팀인 이유로 그에게 엉덩이를 내주는 일은 없지만 두산 오재원에게 색다른 인사치레(?)를 받는다. 박종윤은 “오재원은 카메라가 안 잡히는 타이밍에 반갑다며 등을 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반가움에 넋을 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큰코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박정권은 “3볼 2스트라이크 풀카운트 상황에서는 1루수가 베이스를 비우고 뒤로 이동해야 하는데 주자와 계속 수다를 떨다 코칭스태프한테 혼난 적이 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당황했었다”고 말했다. 한화 김태완은 “발이 아파서 제대로 뛰지 못해 도루는 못하겠다고 말하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초구에 2루로 뛰어버리는 선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1루수들은 투수 몰래 만남의 장소를 벗어나려는 주자들 때문에 애를 먹는다. 발이 빠르고 리드 폭이 큰 주자들은 투수의 견제를 유도하기 때문에 바짝 긴장해야 한다. 9개 구단 1루수들은 LG 이대형, KIA 이용규와 김주찬, 두산 정수빈 등을 가장 껄끄러운 주자로 꼽았다. LG 김용의는 “정수빈은 주자일 때도 신경이 쓰이지만 1루 방향으로 기습번트가 가능하기 때문에 타자일 때도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1루수#수다#강민호#채태인#박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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